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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제 탱크 33대 실은 수송선 통째로 나포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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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호 10면

소말리아 해역에는 미국·프랑스·일본 등 각국 함정이 파견돼 자국 선박 보호에 나서고 있지만 기동력이 뛰어난 소형 보트와 자동화기 등으로 무장한 해적들을 단속하기란 쉽지 않다. 사진은 2006년 12월 소말리아 인근 해역에서 선박을 납치했다가 이듬해 2월 체포된 해적들. 소말리아 AFP=본사특약

25일 저녁 우크라이나 선박이 소말리아 해상에서 해적에 납치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러시아인 3명을 포함해 선원 21명이 승선한 이 선박은 러시아제 T-72 탱크 33대, 부품·탄약 등을 싣고 케냐 뭄바사로 향하던 중이었다. 러시아는 즉각 발트해의 프리깃함을 소말리아 해상으로 파견했다. 해적들이 “구출 시도에 나설 경우 가만히 있지 않겠다”며 경고하는 등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첨단 어뢰·미사일로 무장한 21세기 해적

대담하게 탱크 수송선까지 나포한 소말리아 해적은 세계적으로 악명이 높다. 9월 한 달만 해도 이 지역에서 발생한 선박 납치 사건은 6건이나 된다. 10일 한국인 8명 등 선원 21명이 탄 ‘브라이트 루비’호를 시작으로 그리스 선박 3척과 홍콩 선박 1척이 일주일 간격으로 연달아 납치됐다. 국제해사국(IMB)에 따르면 올 들어 이 지역에서 발생한 선박 납치 사건은 총 62건으로 현재도 15척의 선박과 300명이 넘는 선원이 억류돼 있다. 이처럼 이 지역에서 해적 납치 활동이 빈번한 것은 소말리아 정부군과 이슬람 반군 간 내전이 심화되면서 해상 통제가 느슨해져서다. 이 때문에 국제해사국은 소말리아 해안에서 최소 120㎞ 이상 떨어져 항해하라고 권고하고 있다.
 
소말리아 해적은 난민 출신이 대부분
이런 경고에도 불구하고 세계 각국의 선박이 홍해와 인도양을 잇는 주요 해상로 위에 위치한 소말리아 해역을 멀리 피해 돌아가기란 어렵다. 세계 석유 생산량의 4분의 1이 운송되는 길목이자 무기·광물 등을 실은 수송선의 주요 항로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와 일본의 경우 참치잡이 원양어선의 활동 해역과 가까운 지역이라 소말리아 해적들의 공격 대상이 되기도 한다.

윤민우 교수

소말리아 해적 활동은 3년 전부터 부쩍 늘어나는 추세다. 100명 정도로 추산되던 해적이 내전이 격화된 3년 새 1000명 이상으로 불어났다. 내전으로 난민이 된 소말리아의 청년들에게 해적이 되는 것은 생계를 보장받는 길이다. 소말리아 해적의 근거지는 중앙정부의 통치권이 잘 미치지 않는 반(半)자치 지역인 항구도시 에일이라는 곳이다. 선박과 선원들을 납치한 뒤 억류해 두는 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해적들은 역할에 따른 분업화가 잘돼 있다. 이곳에서는 일종의 거대 사업인 셈이다. 실제 해상에서 납치 임무를 맡는 해적은 10명 정도지만 피랍 선박이 에일항에 도착하면 수십 명의 해적이 물자와 선원을 옮기고 해변을 감시한다. 해적들은 지역 토호나 군벌의 비호를 받고, 이들에게 자금을 대는 역할도 한다.

소말리아 난민 출신 해적들은 어린 시절부터 전쟁의 포화 속에서 자라왔기 때문에 타 지역 해적에 비해 폭력적이고, 무기 사용에도 능숙한 특징이 있다. 이들은 러시아제 소총 AK47을 잘 다룰 줄 알고 기관총·로켓추진수류탄(RPG)으로 중무장하고 있다. 휴대용 위성전화기·위성내비게이션·통신감청장비·야시경 등 첨단 디지털 장비까지 보유하고 있다. 대부분 기동성이 좋은 소형 보트를 이용하지만 대형 해적선(모선)을 가진 해적들은 잠수함 견제를 위한 대잠어뢰와 프랑스제 대함무기인 엑조세미사일, SA-14 같은 견착용 대공미사일까지 지녔다. 모선을 가진 해적들의 경우 활동 영역이 소말리아 인근 해역을 벗어나기도 한다. 먼바다로 나가 공격 대상을 물색한 뒤 스피드 보트를 이용해 공격하는 전술을 사용한다. 소형 보트로 대형 유조선이나 화물선을 공격하는 게 쉽지 않아 보이지만, 강력한 화력으로 선박을 위협해 정지시킨 뒤 갈고리나 줄사다리를 이용해 재빨리 승선해 순식간에 배를 장악한다.

해적이 최첨단 무기와 장비를 보유할 수 있는 것은 풍부한 자금력 때문이다. 피랍자 석방을 대가로 받아 내는 몸값은 통상 30만∼150만 달러로, 지난 한 해 동안 소말리아 해적의 수중에 떨어진 몸값은 모두 3000만 달러(약 35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세계 각국에서 운송되는 구호물품과 원유를 가득 실은 유조선을 나포한 뒤 이를 밀거래 시장에 팔아 챙기는 돈까지 합하면 이들이 벌어들이는 수입은 막대하다.
 
믈라카 해협 해적은 삼합회와도 연계
나이지리아의 경제 수도인 라고스항 인근 해역과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섬의 믈라카 해협도 요주의 지역이다. 라고스 인근 바다는 정부군과 무장반군인 니제르델타 해방운동의 내전으로 치안이 불안해 해적 활동이 왕성하다. 아프리카 최대 산유국인 나이지리아의 석유 생산마저 줄게 할 정도로 납치와 강도로 악명이 높다. 나이지리아 해적은 배가 항구로 들어오기 위해 속도를 늦추는 타이밍을 포착해 공격을 감행한다. 특히 국제 구호물자를 실은 배들이 자주 공격당한다.

폭 2.5㎞, 길이 900㎞의 믈라카 해협은 어선만 600여 척이 항상 오가는 지역으로 언뜻 봐선 어떤 배가 해적선인지 구분하기 어렵다. 해적선들은 보통 모터를 두 개 가지고 다니다가 공격 시점이 다가오면 쾌속 모터를 장착해 순식간에 노략질을 하고 1만7000여 개의 주변 섬 지역으로 숨어 버린다. 1997년 금융위기로 인도네시아 경제가 붕괴되면서 많은 어부와 해상택시 선장들이 해적으로 변신했다. 이들 뒤에는 전직 해군 장교들이나 경찰 간부 등 지역 토호 세력이 버티고 있다. 이들은 다시 거대 범죄 조직인 중국계 트라이앵글(삼합회) 등과 연계돼 있다. 이들이 훔친 선박은 중국 남부 해안 도시나 베트남에서 새로 페인트칠을 한 뒤 라이베리아·파나마·몰타 등의 국적으로 세탁된다.

인도네시아 해군은 120여 척의 크고 작은 경비정과 군함을 보유하고 있지만 장비가 낡고, 훈련 수준이 낮다. 실제 해상에서 작전 가능한 배는 불과 30~40척밖에 되지 않아 치안 부재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 밖에 칠레·페루 등 남미 해적들의 활동도 꾸준하다. 정부에서 바다를 사유화해 외국 기업에 넘겨주자 고기잡이를 못하게 된 어부들이 해적으로 전업해 어선들을 공격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전 세계에서 발생한 해적 피해 공식 사례는 263건이다. 하지만 선박회사들이 보험료 증가와 기업 이미지 때문에 국제해사국에 보고하지 않은 것까지 합하면 해적에 의한 피해는 300여 건을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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