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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성장·신기술의 옷으로 갈아입은 古典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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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호 34면

최근 국정과제로서 녹색성장이 제시되는 것을 보고 반가움과 함께 과거로 회귀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10년 전 환경부 장관을 하면서 ‘그린코리아21’을 외쳤을 때의 외로움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14년 전에 썼던 옛 글을 구해 읽으면서 그런 기분은 더 해졌다.

그 원고는 1994년 1월부터 1년간 ‘유공과 한전의 공동기획’으로 유공 사보에 실렸던 ‘인간과 에너지’ 시리즈였다. 열두 꼭지로 연재했던 에너지 얘기가 지금 다시 읽어 보니, 수치만 좀 바꾸면 큰 틀에서는 별로 고칠 게 없었다. 에너지 혁신이 그만큼 난제(難題)란 뜻일 텐데, 한편으로 차이가 나는 것도 있다. 최근 들어 예상을 초월하는 가속적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신성장동력으로 기대를 모으는 무공해 석탄에너지 사업은, 역사 속에서 보면 21세기 신기술의 옷을 입은 고전(古典)이다. 태곳적부터 에너지는 문명의 근간이었고, 전쟁조차 에너지에 의해 승패의 운명이 갈렸다. 비산유국인 독일의 히틀러는 제2차 세계대전을 벌이면서 ‘석탄의 액화공정’에 의존했다. 전쟁 중에 베르기우스 공정의 개발로 휘발유 합성에 성공했다. 히틀러가 일급 디자이너 포르셰 박사에게 설계시킨 독일 국민차 ‘딱정벌레’(36년 처음 생산된 폴크스바겐)도 초기에는 석탄에서 뽑아낸 가솔린으로 달렸다.

45년 독일의 패전과 함께 미국은 베를린에서 자그만치 50만 장에 달하는 석탄 액화공정 기밀문서를 입수한다. 그리고 70년대 에너지 쇼크가 닥치자 이들 문서를 본격적 연구 대상으로 공개한다. 석탄 매장량이 엄청난 미국이 21세기 기술계획에 보다 경제적이고 우수한 석탄 액화기술을 포함시킨 것은 지극히 당연한 귀결이다.

우리의 무공해 석탄에너지 사업은 ‘질 낮은 석탄에서 합성석유를 뽑아내고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가스를 재활용하는 기술’로서 선진국과 기술 격차가 크지 않다는 데 착안한 전략적 접근으로 보인다.

첨단기술과 온고지신(溫故知新)의 인연은 자동차 기술 혁신에서도 잘 드러난다. 1900년 뉴욕에서 최초의 모터쇼가 열렸을 당시 출품된 모델은 세 가지였다. 가솔린 차, 증기 차, 그리고 배터리 카. 구경 온 사람들이 운전 시범까지 할 수 있도록 전시회를 꾸몄다는데, 그 시연에서 가솔린 차는 잘 달리면서 매연과 기름 냄새를 풍겼다.

증기 자동차는 폭폭 수증기를 뿜는 것이 보였고, 배터리 카는 조용히 달렸으나 배터리가 닳았다.

만약 20세기 초부터 배터리 자동차가 도로를 누비게 되었더라면 산업문명을 암울케 만든 환경오염과 에너지 걱정은 전혀 차원을 달리했을 것이다. 시행착오라고 하기에는 그 대가가 너무 커 100년이 지나서야 전기자동차 시장에 본격 도전하고 있다. 앞으로 전기자동차의 개발·보급이 얼마나 순조로울지는 단순히 기술적 과제라기보다 사회적 인프라 혁신으로 인해 복잡한 양상으로 전개될 것이다.

태양에너지의 이용도 고대로부터 여기저기 뚜렷한 자취를 남기고 있다. 북반구에서 집을 남향으로 앉혔던 지혜는 초창기 에너지 기술인 셈이었고, 이제 21세기 기술 혁신이 언제쯤 ‘태양의 시대’를 열 수 있을지 단순히 흥미 차원을 넘어 절박한 과제가 되고 있다.

그리고 물리적 조건과 현존하는 기술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분산형 신재생에너지로서 각광받는 풍력은, 중세의 풍경에서 보듯이 유럽의 11세기 동력기술 혁명의 주역이었다. 이들 대체에너지원의 경제성 해결은 시장의 신뢰 여부가 주요 변수고, 기술 개발 속도는 유가의 오르락내리락함과 밀접한 상관관계를 보여 왔다.

그러나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단순히 기름값 때문에 대체에너지에 눈을 돌리는 게 아니라 녹색성장으로 전환해야 선진형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산업화 시대의 관성에서 벗어나야 한다. 달도 차면 기운다. 오르막을 치닫고 나면 가는 길은 내리막이다. 기존의 기간산업은 우리 경제·사회 발전에 결정적 기여를 했으나 언제까지 황금기가 지속될지 장담할 수 없다. 새로운 기초로부터 새로운 성장동력이 창출되고 있는 글로벌 기술 경쟁에서 살아남는 길을 찾아야 한다. 20세기 ‘한강의 기적’을 이룬 저력으로 이제 21세기 ‘그린 코리아의 기적’을 일구어야 한다. 녹색성장의 성패 여부에 우리의 미래가 달려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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