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성교육 교과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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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미국의 성교육이 「안전한 섹스」에서 「금욕주의」로 방향을 바꿔가기 시작한 것은 레이건대통령 때부터였다.「가족중심」의 기치를 내건 보수파들의 노력이 결실을 본 결과지만 그 배경에는 에이즈공포와 미혼모 범람을 우려한 전사회적 보수화 물결이 뒷받침한 것이었다.최근 30여년간 가장 진보적인 대통령으로 꼽히는 클린턴마저 금욕주의에 바탕을 둔 「10대 임신 방지 캠페인」을벌이기에 이르렀다.여기에 투입된 예산만도 4억달러에 달했다.
성교육 방향전환 초창기인 83년 개설된 프로그램으로 「성존중프로그램」이란 것이 있다.이 프로그램의 특징은 기본적으로 『애무를 포함해 어떤 방식의 성행위도 해서는 안된다』고 가르친다는점이다.매 장(章)에 수록돼 있는 경구(警句) 들도 사뭇 50년대 식이다.『충동을 억제해 동정을 지키자』 『개는 쓰다듬되 이성(異性)은 더듬지 말라』 『어쩌다 실수를 저질렀더라도 「제2의」 동정을 지켜라』.
이 프로그램은 10대의 섹스관을 바꿀만큼 성공을 거둔 것으로평가되고 있지만,그 「진정한 효과」에 대해서는 아직도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이같은 방식의 성교육이 모든 10대들에게 획일적으로 통용될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 비판의 핵심이다.무조건적 억제는 오히려 잠자는 성욕구를 자극할 우려가 있으며,성에 대한 기피증이나 공포심을 심어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성교육이 신중하게 이뤄져야 할 당위성을 보여주는 예다.미국의성교육이 「금욕주의」 위주로 방향을 바꾼 이래 대부분의 성교육프로그램이 금욕을 다루고 있지만 오로지 금욕만을 가르치는 과정은 고작 1% 안팎이다.연령.성별.성격.가정환 경에 따라 수많은 성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어 놓고 대상자에게 상응하는 교육을 실시하는게 미국 성교육에서 배울 점이다.
우리나라에서도 국내 최초로 성교육교과서를 만들어 내년부터 서울시내 초.중.고생들을 대상으로 성교육을 실시키로 했다고 한다.구체적인 내용과 방향은 더 두고 봐야 알겠지만 「안전한 섹스」와 「금욕」이 절충을 이룰 것으로 보인다.한데 우선 중학교 수준으로 제작해 초등.고등학교 교재로 함께 쓰겠다는 발상은 아무래도 온당치 않다.다소 늦더라도 연령에 걸맞은 교재부터 만들어 놓고 실시하는게 바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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