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리뷰>연극"Toilet"-진지한 자세 돋보이는 희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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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동숭동에 가면 40여개의 연극극장이 밀집해 있다.하지만 한국연극공연의 메카로 불리는 그 곳에는 브로드웨이처럼 후미진 곳일수록 실험성강한 연극이 공연된다는 식의 예술적 경향의 차이는 보기 어렵다.오히려 마로니에 공원 뒤로 한 골목 씩 들어갈수록섹스 코미디물이나 가벼운 상업 연극이 대종을 이룬다.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오프오프 대학로(대학로의 제일 안쪽 골목)의 조그마한 극장에서 매우 의미있는 작업을 하기에 그곳을 찾아갔다.
은행나무 극장(대표 이영석)은 창작극,새로운 연기자와 연출자발굴을 위해 『단편희곡찾기』라는 기획을 하고 있었다.94년,90년 신춘문예 당선작 『Toilet,Toilet(원제:눈뜨라 부르는 소리가 있어,양영찬 작.성준현 연출)』과 『황금을 찾아서(황금의 잔 강종필 작,송종석 연출)』가 첫번째로 무대에 올려졌다. 한 직장의 화장실에서,화장지가 없는 상황이 주어지고 서로 다른 직위의 사원들이 나란히 변기에 앉아 있다.가장 기본적인 생리현상의 해결을 위한 곳에서도 존재하는 상하 관계와 극한 상황에서 더 잘보이는 인간의 모습이 극의 중심에 놓여 있다. 작가는 같은 상황을 홍대리와 백부장에게 세번 반복시켜 각기다른 해결방법을 보여준다.이 변화를 주도하는 홍대리는 수시로 떠오르는 아내의 모습에 자극받아 백부장에게 매번 달리 대처한다.주먹질을 하다가 결국 무릎을 꿇거나 의기투합해 팬티를 벗고 한잔 하러 가거나 한장 남은 휴지를 건네주고 그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것이다.장면마다 극에 개입하는 아내의 대사와 홍대리의변화가 조금 더 긴밀히 연결되고 공연의 리듬에도 변화를 줄 수있었다면 더욱 설득력있고 재미도 있었으리라는 아쉬움이 들었다.
현실에서도 어중간한 세대인 30대의 홍대리는 신세대 부하직원을 같은 상황에서 만나 그에게 비난당한다.백부장에 대한 판단,휴지를 기다리느라 잃어버린 시간의 가치계산,담뱃갑의 종이로 문제를 해결하는 등 또 다른 성격이 부각된다.무심코 드나드는 일상의 공간에 극적인 상황을 도입해 상상의 재미를 무대화하고 이를 통해 사회상,인간상,조직 속의 문제 등의 보편적 사실을 되새기게 하는 것이다.
공연의 매 순간 재미에 치중해 난잡한 구성을 하고마는 우를 범하지 않고 진지하고 성실하게 희극을 만들었다.어휘와 순발력으로 웃기기보다는 상황과 성격이 웃음을 통해 즐거움과 메시지를 함께 전하는 것이 희극의 공연임을 새삼 생각하게 했다.
최준호 연극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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