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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멜라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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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전 세계를 경악시킨 ‘중국산 분유 스캔들’의 원인 물질인 멜라민(melamine)은 사실 그리 ‘독종’이 아니다. 학자들은 맹독성도 고독성도 아닌 약독성 물질로 분류한다. ‘발암물질’이란 보도도 있지만 발암성 물질의 등급을 매기는 국제암연구소(IARC)의 평가는 ‘3급’. 사람에게 암을 일으킨다는 어떤 증거도 없다는 의미다. 커피의 카페인, 전자파, 술의 주원료인 에틸렌 등과 같은 등급이다. 체내에 오래 머물지도 않고, 대부분 소변으로 빠져나간다. 중국산 멜라민 오염 사료를 준 국내 양어장의 물고기에서 멜라민이 나오지 않는 것은 이래서다. 미국 식품의약국(FDA)과 농무부는 지난해 5월 돼지 6000마리와 닭1000만 마리가 멜라민 오염 사료를 먹은 사건이 발생하자 “소비자가 이들 고기를 먹더라도 건강상 피해를 볼 위험은 ‘매우 낮다’(very low)”고 공식 발표했다. 해당 제품에 대한 리콜 조치도 없었다.

문제는 멜라민 오염 식품이나 사료를 직접 섭취하는 것이다. 단백질 처리 장기인 신장이 망가진다. 신장결석이 생기고 신부전으로 숨질 수 있다.

멜라민은 1834년 처음 합성된 이래 인류에 상당한 기여를 해왔다. 질소가 풍부해 비료의 원료로, 도자기의 코팅제로, 끈적끈적한 특성이 있어 접착제로, 멜라민 식기 같은 플라스틱의 원료 등으로 쓰였다. 멜라민은 질소 함량이 67%에 달한다. 1958년엔 소의 비(非) 단백질성 질소 공급원으로 특허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경쟁 제품인 면화씨·요소에 비해 효율이 떨어졌기 때문에 소에 멜라민을 먹이는 일은 오래 가지 않았다.

하지만 중국의 악덕업자들이 이를 엽기적으로 이용했다. 역시 ‘질소 덩어리’인 단백질 대신 멜라민을 넣으면 감쪽같이 사료나 분유의 단백질 함량을 맞출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동물용 사료에 값비싼 밀 글루텐(단백질) 대신 멜라민을 넣고, 우유에 물을 탄 사실을 숨기기 위해 분유에 멜라민을 첨가했다. 비싸지만 조작할 수 없는 ‘단백질 함량 직접측정법’ 대신 질소 함량만 재 6.25를 곱하는 간이검사법을 채택한 것도 문제였다.

이번 중국발 식품 안전사고는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엽기의 극치다. 불과 1년 전 미국에서 멜라민 사료를 먹은 애완동물이 대량 폐사한 사건을 뻔히 보고도 이런 일을 저지른 그들의 행태에 가슴이 먹먹해진다.

박태균 식품의약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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