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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속철 효과' 부풀려졌나…개통 한달 부동산은 '제자리걸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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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1면

고속철도가 개통(4월 1일)된 지 한달이 지났다. 역사 주변 부동산시장은 들썩일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대체적으로 안정세다. 충청권 아파트 분양시장은 활기지만 토지와 기존 아파트시장은 대부분 제자리걸음이다. 고속철도 역사 부동산시장과 일본 신칸센 주변은 어떻게 됐는지 알아봤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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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조용합니다. 고속철도 개통 재료가 이미 반영된 것 같아요." 지난 주말 고속철도 천안아산역에서 승용차로 2~3분 거리인 천안시 불당동 한 부동산 중개업소 사장은 "4월 에 한건의 거래도 못했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곳엔 올 초만 해도 불당지구 분양권이나 토지를 사려는 외지인들로 북적댔지만 이날은 찾는 사람이 없어 주차장이 텅 비어 있었다. 인근 한 중개업소 사장도 "고속철도 요금이 비싼 데다 역에서 시내로 들어오는 대중 교통이 불편해 개통 효과가 예상보다 크지 않은 것 같다"고 전했다.

◆충청권 역사 주변 토지시장 썰렁=고속철도 개통의 최대 수혜지로 꼽히는 천안.아산.대전지역 토지와 기존 아파트값은 보합세다. 천안의 한 중개업자는 "땅값이 지난해 두 세배 올라 가격 부담을 느끼는 데다 거래 규제가 심해 투자자들이 많지 않고 실수요자만 가끔 찾는다"고 말했다. 투자자는 천안.아산보다는 충남 예산.홍성.보령 등 충청 서북권으로 발길을 돌리고 있다. 땅값이 상대적으로 싸기 때문이다.

대전역 주변에 있는 하나공인 황인구 사장은 "땅주인들이 역세권 개발 기대감으로 매물을 내놓지 않아 거래가 뜸하다"고 말했다.

대전역은 고속철도 개통에도 아직 상권이 활성화하지 않아 뒷길엔 빈 점포가 적지 않다. 그러나 대전시가 상반기 대전역세권 26만평 개발을 위해 타당성 조사를 마칠 예정이어서 점차 상권이 나아질 전망이다. 천안아산 역세권은 연내 보상이 끝날 아산신도시 배방1지구(107만평) 개발이 마무리된 뒤에나 제모습을 찾을 것으로 중개업자들은 내다본다.

천안 대학가 일대 원룸 주택들은 고속철도 개통으로 타격을 받을 것이란 당초 예상을 빗나갔다. 고속철도를 이용하는 통학생들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원룸주택 밀집촌인 안서동 일대 원룸주택은 고속철도 개통 이후 찾는 학생이 늘면서 공실률(빈방 비율)이 20% 정도로 한달 전보다 5%포인트가량 낮아졌다. 이곳 연세부동산 노조환 부장은 "러시아워 때 천안아산역에서 안서동으로 이어지는 동서대로를 통과하는 데만 한 시간이 걸린다"며 "고속버스를 이용할 때보다 불편하고 시간도 더 걸릴 때가 많다"고 말했다.

분양시장은 고속철도 개통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개통 직전인 지난 3월 말 백석동에 분양된 벽산블루밍 아파트는 천안에서 드물게 2순위에서 모집가구 수(382가구)를 넘긴 데 이어 계약 시작 후 3주 만에 10여가구만 남았다. 아파트 분양권 값도 천안 불당지구, 대전 노은지구를 중심으로 강세다. 중앙일보조인스랜드와 부동산114 조사에 따르면 4월 한달간 천안 분양권 값은 1.58%, 대전은 1.01% 올랐다. 실제로 8월 입주하는 불당지구 아이파크 34평형 웃돈은 9500만원으로 한달 전보다 500만~1000만원 상승했다.

◆용산은 상가, 광명은 땅 강세=고속철도 개통 이후 용산역사 이용객은 하루 8만5000명으로 한달 전보다 15% 늘었고, 주변 유동인구는 30% 정도 급증했다고 용산역 관계자는 밝혔다. 용산역사에 상업시설이 아직 문을 열지 않아 인근 음식점들이 호황이다. 권리금이 2000만~3000만원 뛰었다.

임대분양돼 오는 9월 문을 여는 용산역사 전자전문점의 웃돈이 한달 새 1000만~2000만원 올라 1억5000만~2억원선이다. 하지만 땅값과 주변에 들어설 주상복합 등의 시세 변화는 없는 편이다. 태림공인 윤용식 실장은 "용산역사 내 상가만 주목받는다"며 "땅값이나 집값은 개통 전에 이미 많이 올라 막상 개통된 뒤로는 보합세"라고 말했다. 수요는 있는데 호가가 너무 높아 거래는 잘 안 된다는 것이다.

경기도 광명시 땅값은 광명 역사에서 가까운 소하.일직동 일대를 제외하곤 대체로 보합세다. 소하동 일대 대로변 그린벨트 논.밭은 평당 250만원으로 개통 전보다 5%가량 올랐다. 하지만 고속철도에서 승용차로 10~20분 거리인 가학.노온사동 일대 땅값은 개통 전과 변화가 거의 없다고 중개업자들은 전한다. 대명부동산 컨설팅 유민우 실장은 "광명시가 위장 전입 단속을 강화하면서 외지인들의 토지거래가 많지 않다"고 말했다. 기존 아파트 값은 재건축 대상을 중심으로 약세를 보이면서 4월 한달간 0.33% 빠졌다.

◆지방은 찬바람 여전=충청권을 제외한 지방 부동산시장은 여전히 냉기가 흐른다. 고속철도 역사가 대개 도심 상업지역이나 주거지에서 떨어진 곳에 있다 보니 역세권 메리트가 별로 없다는 게 중개업자들의 전언이다.

지난 3월 말 경부고속철 동대구역에서 걸어서 5분 거리인 대구 동구 신암동에 분양된 재건축단지의 일반 분양분은 조합원 몫을 제외한 130가구였는데 30%가량 미분양됐다. 분양업체 관계자는 "고속철 개통 효과를 예상했는데 기대에 못 미쳤다"고 말했다.

고속철도 주변 상권도 이미 오래 전에 개발된 소규모 상가들이고 유동인구가 크게 늘어난 것도 아니어서 별다른 덕을 보지 못한다. 부산역 인근 동아공인 최기덕 사장은 "역 주변은 낡은 상가들뿐이고 부산역에서 지하철로 15분 거리에 부산 최고인 서면 상권이 있지만 임대료나 권리금 인상 등은 없다"고 말했다.

호남고속철도 광주역이 있는 광주 광산구 송정동 우정공인 박상진 사장은 "부동산시장이 전반적으로 가라앉아 있어 거래가 거의 없다"고 말했다. 지방 고속철도 역사 일대가 오래 전에 자리잡혀 새로 개발될 여지가 별로 없기 때문에 개발 기대감도 찾아보기 어렵다고 중개업소들은 전한다. 다만 지난해 11월 중간역 건설지로 발표된 경북 김천과 울산 역사 예정지 땅 시장은 발전 기대감에 다소 올랐다. 울산 울주군 신라공인 채영우 사장은 "발표 뒤부터 지난 1월까지 3개월 동안 40%가량 올라 평당 30만원 정도인 논이 40만~50만원선"이라며 "울산 사람들이 많이 샀고, 지금은 거래가 거의 끝나 조용한 편"이라고 말했다.

박원갑.안장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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