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리고 비 오는 날 대비해 한·중 관계 우산 준비할 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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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서울 프라자 호텔에서 열린 한·중 수교 16주년 기념 한·중 지도자 포럼에서 쉬둔신 전 중국 외교부 부부장(오른쪽에서 둘째)이주제발표를 하고 있다. [박종근 기자]

 “흐리고 비 오는 날의 한·중 관계에 대비한 우산을 준비하자.”

21세기 한·중 교류협회(회장 김한규 전 총무처 장관)와 중국인민외교학회(회장 양원창 전 외교부 부부장)의 공동 주최로 23일 서울 프라자 호텔에서 열린 제8차 한·중 지도자 포럼에서 남성욱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소장은 한·중이 이젠 위기관리 능력을 제고해야 할 시점을 맞았다고 주장했다. 수교 16년 만에 ‘외교의 기적’으로 불릴 만큼 한·중 관계가 증진됐지만 아직도 체제 차이에 따른 불신과 상호 이해 부족 등으로 민족 감정을 자극하는 사안이 발생할 경우 양국 관계가 급속히 악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한·중 각계 인사 100여 명이 참가한 포럼에서 참석자들은 양국이 정부 차원에서는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로 그 관계의 수준을 한 단계 격상시켰지만, 접촉 빈도와 강도가 높아짐에 따라 한·중 간 갈등 빈도와 강도 또한 높아질 것이라면서 이에 대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했다.

탕번위안(湯本淵) 중화전국청년연합회 부비서장은 “양국 관계에서 발생하는 부정적인 돌발적 사건이나 복잡한 상황에 대한 처리능력을 향상시켜야 편협한 민족주의 정서를 억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우제창 민주당 의원은 한·중 관계를 한마디로 ‘불균형 관계’로 표현할 수 있다며 이는 “양국 관계가 공식적·양적 측면에서의 교류 심화에도 불구하고 위기상황에 대처할 광범위한 상호 이해와 의사소통 능력이 결핍돼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한·중의 위기관리 능력 제고 방안과 관련해 남성욱 소장은 “양국 외교부가 나서는 고위급 전략대화와 더불어 민간이 참여하는 1.5트랙 차원의 전략대화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박진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 위원장은 이와 관련해 최근 재중국 한국인회가 벌이고 있는 민간 차원의 ‘겸따마다(겸손하고 따뜻한 마음으로 다가가기)’ 운동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우제창 의원과 탕번위안 부비서장은 한·중 청년 지도자들의 교류를 통한 양국의 신뢰 증진을 강조했다.

포럼에선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건강과 북핵 문제 등도 토의됐다. 쉬둔신(徐敦信) 중국 전 외교부 부부장은 “김정일 위원장의 건강에 대해선 아직 어떤 소식통을 통해서도 들은 게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유사시 중국군이 북한에 진출할 가능성이 있는가라는 구상찬 한나라당 의원의 질문에 대해 쉬 전 부부장은 “중국은 타국에 대한 내정 불간섭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며 “출병 등과 같은 극단적인 조치는 절대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교착상태에 빠진 북핵 문제와 관련해 남성욱 소장은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의 임기가 4개월밖에 남지 않아 현재로선 큰 돌파구를 찾기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한 반면 쉬둔신 전 부부장은 “미국의 부시 정부가 북핵 문제에서의 성과를 원하고 있기 때문에 당사자들이 인내를 갖고 접촉할 경우 진전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한편 쉬 전 부부장은 한·미 동맹 복원을 강조하는 이명박 대통령의 외교정책과 관련해 “이해할 수 있고 평가할 만하지만 우려를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고 말해 중국이 아직도 한·미 간의 결속이 상대적으로 한·중 관계의 약화를 가져오지 않을까를 걱정하고 있다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번 포럼엔 이수성 전 총리와 중국의 쉬자루 전 전국인민대표대회 부위원장 등도 참석했다. 

유상철 기자 , 사진=박종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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