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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초대받은 서민풍 ‘한국 소나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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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로마 산 노메 디 마리아 성당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한 최영식씨. [남대현씨 제공]

 ‘피니 디 꼬레아(PINI di KOREA)’ 이탈리아 말로 ‘한국의 소나무’다.

춘천의 산골 폐교에 칩거하며 소나무 그림에 몰두해온 한국화가 우안(牛眼) 최영식(55)씨가 이 같은 제목으로 로마에서 개인전을 연다. 주세페투치 국립동양예술박물관에서 열리는 전시회는 23일 오전 11시(현지 시간)개막해 10월 26일까지 계속된다. 소나무는 로마의 시목(市木)일 정도로 공원과 거리에 많다. 최씨는 “소나무는 한국인의 민족성과 가장 잘 부합되는 나무”라며 “중국이나 일본 그림에서의 소나무보다 선이 다채롭고, 풍부하며, 아름다운 우리 소나무가 그들의 눈에 어떻게 비춰질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어릴 때 청력을 잃은 최씨는 가난과 신체장애로 정규학교 미술교육을 받지 못하고 지역에서 활동했던 소헌 박건서 화백에게서 기본적인 화법을 사사하고, 이후 독학으로 그림 공부를 했다.

그는 90년대 말 소양호 삼막골 춘천예술인연수원(옛 청평분교)에 홀로 들어가 10년째 소나무 그리기에 용맹정진하고 있다. 그는 곧게 쭉 뻗은 금강송 보다 온갖 풍상을 겪어 기울어지고, 틀어지고, 옹이가 있는 등 서민풍의 보통 소나무를 주로 그려 허문영(시인·강원대 교수)씨는 그의 소나무 그림을 ‘우안송’이라 부른다.

로마 국립동양예술박물관에서 전시되는 최영식씨의 작품 ‘천년의 바람(180 x 132)’.

이런 최씨의 로마 초대전은 평소 그의 소나무를 벽에 걸어두고 보고 있던 교포 남대현(43)씨의 주선으로 이뤄졌다. 올해 처음 ‘한민족 한국주간’을 설정해 운영하는 로마한국교민회는 전시를 주 행사로 정했다. 동양예술박물관은 한국주간을 계기로 2009년 60㎡ 규모의 한국관을 개설하기로 하고, 이를 기념해 한국 작가 기획전을 제의했다.

작가 선정에 참여하게 된 남씨는 최씨의 작품이 로마와 교감할 수 있다는 것과 그의 치열한 작가정신을 프레젠테이션, 선정위원의 마음을 사로 잡았다. 작품 운송과 최씨의 왕복 항공권은 대한항공이 협찬하고, 할 달 정도의 체류비는 교민회가 부담해 전시를 성사시켰다.

최씨는 이번 전시에서 2호(엽서 두 장 크기)부터 200호까지 모두 46점의 소나무와 문인화를 선보인다. 지난해 춘천에서의 개인전에 내놨던 작품 이외에 8점은 로마 전시를 위해 새로 그렸다. 노란 송화가 핀 그림에는 처음으로 송화 가루를 물감 재료로 활용했다.

최씨는 전시회가 열리는 동안 직접 먹을 갈고 붓을 잡아 그림을 그리는 네 번의 시연회를 한다. 또 로마한글학교 어린이와 로마대학 동양학부 학생을 대상으로 시연 및 특강도 한다. 이를 위해 그는 삼막골 화실을 그대로 옮긴다는 개념으로 준비했다.

“로마의 소나무가 생각보다 멋 있고 나름대로 기품이 있다”고 로마 소나무에 대한 소감을 피력한 최씨는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등 이 활동했던 곳도 둘러보는 등 서양문화의 중심지에서의 경험과 전시가 문화적으로, 정신적으로 내게 큰 전환점이 될 것이라 기대한다”고 말했다. 최씨는 귀국하면 로마의 소나무를 소제로 전시회를 열 계획이다. 

이찬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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