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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는 미술관 ④ 동대문 동화시장에 ‘거인국 동화’를 입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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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가위바위보’ 놀이 의자에 두 어린이가 앉아 있다. 자판기에도 그림이 그려져 있다.

 서울 옛 동대문운동장 맞은편 밀리오레 쇼핑몰의 샛길을 따라 100m쯤 걷다 보면 ‘동화시장’을 만날 수 있다. 지어진 지 40년 된 넓적한 직육면체 모양의 5층짜리 건물은 얼핏 봐도 낡은 느낌이 전해진다. 이곳엔 지퍼·단추·스팽글(옷 장식용 조각) 등 의류 부자재를 팔거나, 이를 옷에 다는 작업을 하는 700여 개의 점포가 모여 있다. 안으로 들어서자 ‘타닥타닥’ 재봉틀 소리가 끊이지 않고, 진한 재봉틀 기름 냄새가 풍긴다.

정문 앞 계단을 따라 3층으로 올라가는 길. 이곳이 평범한 상가형 시장이 아님을 알려주는 5m 높이의 알록달록한 의자가 놓여 있다. 검붉은색다리 위 등받이엔 수십 개의 단추와 스팽글이 달렸다. 각기 다른 색깔과 무늬로 짠 32가지 천은 독특한 조합으로 세로 무늬를 이뤘다. 위아래로 길고 곧게 세운 무지개 같기도 하다. ‘거인 의자’란 작품이다. 공공예술 기획사 ‘플래닝 미도’가 동화시장에 만든 조형물 중 하나다.

상인들의 표정 하나하나가 특색 있게 표현돼 철제로 된 방화문에 그려졌다.

플래닝 미도는 지난해 동화시장에 벽화를 그리고, 조형물을 설치했다. 서울시의 도시 갤러리 사업 대상 중 하나였다. 삭막했던 회색 빛 계단 복도와 자판기엔 색과 그림을 입혔고, 가위바위보 놀이를 하는 모습의 의자를 놓아 휴식 공간을 마련했다. 바느질하는 손놀림이 너무 빨라 손이 여섯 개로 보이는 아주머니, 얼굴도 단추 모양인 단추가게 아저씨 등의 그림은 상인들이 일하는 모습을 코믹하게 담아냈다. 초록색으로 방수 처리된 옥상 바닥은 대형 꽃 그림으로 깔았다. 지난해 12월 완성되기까지 1년의 시간이 걸렸다.

◆상인도 하나 된 공공예술=상가 이곳 저곳을 두리번거리며 사진을 찍다 보면 경비원이 다가와 “어디서 오셨어요”라며 퉁명스럽게 말을 건다. 옷 다루는 기술에서 각자 ‘달인’의 경지에 올라 있는 상인들이 자신의 비법이

옥상에 설치된 대형 단추는 상인과 방문객들의 휴식 공간으로 이용되고 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노출될까 봐 걱정하기 때문이란다. 작업에 참여한 11명의 작가도 경비원 박수길(57)씨의 태도가 인상 깊었는지 3층 문 앞에 그를 그려 넣었다. 박씨는 “그림이 맘에 안 든다”면서도 ‘사진 한 번 찍자’는 방문객들의 요구에 못 이기는 척 포즈를 취해준다.

“솔직히 일거리 맡기러 찾아오는 사람은 별로 안 늘었어. 그래도 시장이 북적대니 사는 맛이 나지요.” 이곳에서 30년째 자수일을 하고 있는 김진수(63)씨의 소감이다. 동화상가 고인용 총무부장도 “주변 높은 건물에 있는 사람들에게 볼거리를 줄 수 있다는 게 큰 보람”이라고 말했다.

◆‘동화(童話)’를 형상화=‘시장에 수집광 거인이 산다’는 게 플래닝 미도의 첫 구상이었다. 빽빽하게 붙어 있는 점포들마다 수천 개씩 있는 단추·지퍼·실·구슬·리본은 거인이 아니면 모을 수 없을 만큼의 양이라는 상상에서 착안했다. 이어 옹기종기 모여든 사람들이 거인의 수집품들로 옷을 만들어 파는 지금의 시장이 됐다는 동화의 줄거리를 형상화한 것이다.

상상에 따라 옥상에는 거인을 위한 거대한 크기의 지퍼가 놓여 벤치가 됐다. 거인이 썼을 법한 단추도 상인들의 쉼터가 됐다. 거인의 발과 바느질을 하다 다친 손가락을 찾는 것도 동화시장을 둘러보는 재미다.

라윤주 실장은 “동화시장은 상인들의 공동체 의식을 담은 작품으로 채워졌다”며 “내년 1월 성북구 석관황금시장에 ‘황금시대’란 주제로 꾸민 두 번째 작품을 공개한다”고 말했다.

최선욱 기자 , 사진=권혁재 전문기자

◆동화시장=서울 중구 옛 동대문운동장 주변에 있는 10여 개 재래시장 중 하나. 1969년에 지은 5층짜리 상가 건물 안에 있어 ‘동화상가’로도 부른다. 점포가 700여 개에 이르며, 주로 의류 부자재를 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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