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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자로가는길>영천 팔공산 중암암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5면

은해사의 산내 암자 중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기도처가 중암암(中巖庵)이다.비구니 스님들이 수도하고 있는 백흥암을 지나 산길 끝까지 오르다 보면 더 이상 갈 곳이 없는데,그곳이 바로 중암암인 것이다.
거대한 바위 사이에 돌로 쌓은 작은 문 하나가 암자의 일주문인 모양이다.돌문을 지나니 두리번거릴 새도 없이 법당 하나와 요사채가 나타나 있다.마치 낭떠러지 위에서 사랑이 깊은 연인처럼 법당과 요사채가 서로 껴안고 있는 형국이다.낭 떠러지 위의터이므로 모든 게 앙증맞을만큼 작다.법당도,요사채도,정랑(淨廊:화장실)도,종(鐘)도,샘도 작다.안내를 한 법운(法雲)스님만키가 장대같을 뿐이다.
『여기 샘에 얽힌 전설이 있지요.지금은 바위 사이에서 물이 흘러나오고 있지만 옛날에는 암자에 계시는 스님을 위해 쌀이 나왔다고 합니다.날마다 한 사람 몫만 나왔다고 해요.』 법당 측면에 있는 작은 돌샘을 가리키며 꺼낸 법운 스님의 이야기다.아침마다 돌샘에서 한 사람 몫의 쌀이 나와 탁발하지 않고도 암자에서 수도를 했는데,산적 한명이 나타났더란다.그런데 어느날 아침 돌샘에서 쌀이 나오는 것을 목격하게 된 산적은 욕심이 나 스님을 죽였더란다.그런다음 쌀이 더 많이 나오게끔 돌샘의 구멍을 크게 뚫었는데 쌀 대신 피가 솟구쳤으며 산적은 바위 사이에서 부는 석풍(石風)을 맞아 그자리에서 즉사했다는 것이다.물론이 이야기는 욕심을 경계하 라는 불가의 가르침이 전설 속에 녹아든 경우이리라.
『이곳의 정랑도 특이하지요.낭떠러지 위이므로 용변을 보는 즉시 사라져버리거든요.어디로 사라지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나 허공에서 공중 분해돼버리거나 팔공산 어느 숲속의 미물 앞에떨어지지 않겠는가.어쨌든 이곳의 스님은 평생 정랑 청소를 하지않아서 좋겠다.중암암의 역사를 정확하게 기록한 글은 없는 것같다.다만 돌문 밖에 있는 석탑을 보아 오래된 암자일 거라고 추측해볼 뿐이다.석탑이 일주문격인 돌문 밖으로 나와 있는 것은 암자터가 낭떠러지 위의 비좁은 터이기 때문이다.쓰러져 나뒹구는탑신(塔身)을 모아 엉성하게 세워둔 것이지만 그래도 신도들에게는 소중한 기도의 대상인 느낌이다.탑 기단(基壇)위에 자신의 소원을 담아 조그마한 돌멩이들을 쌓아두고 있는 것이 간절해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암자의 식구들을 보려면 암자 밖으로 나와야 할 것같다.암자가 비좁다고 탑도,미로를 연출하고 있는 거대한 바위들도,산의 정상에 서 있는 만년송(萬年松)도 밖으로 나와 산바람을 쐬고 있다.
※은해사를 거쳐 치일저수지에서 백흥암쪽 산길로 1시간40분정도 걸으면 암자에 다다른다.(0563)35-3380.
글=정찬주(소설가) 사진=김홍희(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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