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앙드레 말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파리 시내 생트 주느비에브의 팡테옹은 「위대한 프랑스」의 상징이다.1758년부터 약 30년에 걸쳐 세워진 이 건물은 원래파리 수호성인(守護聖人)생트 주느비에브를 모신 교회였으나 프랑스대혁명후 세속화와 재축성(再祝聖)을 거듭한 끝 에 지금은 프랑스의 국가적 위인들을 모신 사당(祠堂)으로 쓰인다.팡테옹 지하매장소엔 루소,볼테르,미라보,위고,졸라 등 프랑스 역사에 큰족적(足跡)을 남긴 인물들의 유해(遺骸)가 잠들어 있다.
지난 76년 세상을 떠난 앙드레 말로는 작가.사상가.정치가로서 불꽃같은 생애를 살았다.청년시절 「유럽탈출」의 열망에 사로잡혀 있던 말로는 아시아에 깊은 관심을 갖고 1923년 인도차이나로 건너가 크메르 문화유적발굴에 참가하고,이어 중국에 건너가 혁명초기 광둥(廣東)정부에 참가했다.26년 귀국후 광둥을 무대로 한 『정복자』,크메르 문화유적을 찾는 『왕도』,그리고 격변의 소용돌이속의 상하이(上海)를 그린 『인간의 조건』등 소설을 펴내 문명(文名)을 날렸다.
말로는 독일에 나치정권이 들어선 후 반(反)파시즘운동을 적극적으로 벌였다.36년 스페인내전이 일어나자 국제여단 비행대장으로 참전,공화파를 지원했다.39년 독.소불가침조약을 계기로 공산주의와 결별한 말로는 제2차대전이 일어나면서 전 차(戰車)부대 사병으로 참전했다가 포로가 됐다.그후 포로수용소를 탈출,레지스탕스운동에 참가해 유명한 알사스 로렌여단 지휘자로 활약했다.이 과정에서 프랑스 망명정부를 이끌던 샤를 드골장군을 만나 그의 추종자가 됐다.
제2차대전 종전직후 말로는 드골정부의 공보장관으로 입각했으며,59년 알제리사태로 드골이 재집권할 때 문화장관으로 등용돼 69년 드골이 물러날 때가지 10년동안 프랑스 문화정책을 주도했다.말로는 정치에 몸담고 있으면서도 작가로서의 본분을 잃지 않았다.특히 미술에 깊은 관심을 보여 『예술심리학』『침묵의 소리』『제신(諸神)의 변모』등 수준높은 저술을 통해 사상가로서도확고한 위치를 구축했다.
프랑스정부는 오는 11월23일 말로 서거(逝去)20주년을 맞아 그의 유해를 파리 교외 베리에르 르 뷔송에서 팡테옹으로 이장(移葬)할 것을 결정했다는 소식이다.행동하는 지식인이었던 말로는 이로써 프랑스 역사의 한 부분이 됐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