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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무협 창립50돌 앞두고 만난 구평회회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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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창립 50주년 기념일(7월31일)이 불과 닷새 앞으로 다가왔지만 한국무역협회는 밝지 않았다.갑작스런 내리막길 수출 때문이다.구평회(具平會)회장 역시 50돌 잔치보다 우리 경제 및 수출의 문제점과 관련해 정부와 기업인.근로자들에게 평소 하고 싶은 말이 더 많았던듯 솔직하게 밝혔다.『엘리트 관료들이 기득권을 포기하지 않으면 규제완화는 어렵다』『고임금은 기본적으로 정치권에서 잘못했기 때문이다』『남북경협은 다소 부작용이 있더라도추진해야 한다』『3고(高).5高 외 에 높은 허세까지 6高를 시정해야 한다』.아직은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는 지적도 했다.
기업에 대해서는 『이익의 노예가 돼서는 안된다』고 질타했다.具회장은 또 사견임을 전제로 『규제완화가 제대로 되기 위해서는 공무원을 절반으로 줄이고 월급은 두 배로 높여야 한다』고도 말했다.한국무역의 총본산격인 무협의 수장 具회장이 보는 우리 경제 및 수출의 문제점과 해법은 어떤 것인지 본지 박병석(朴炳錫)경제2부장이 만나 들어 보았다.
-하필 수출이 내리막길로 들어선 시점에 창립 50주년 기념일을 맞게 돼 무협회장으로서 감회가 남다를 것 같습니다만.
『항상 잘되라는 법은 없지요.이번 기회에 왜 안되는지 숨어 있는 병을 찾아내고 진단을 확실히 내린다면 장래를 위해 좋은 일입니다.지금까지는 병에 대해 왈가왈부가 많았지요.3高(금리.
임금.땅값)다 5高(물류비.행정규제)다 하는 말이 있는데 저는6高까지 지적하고 싶습니다.그동안 외형위주로 따지다 보니 허세가 높았다는 점도 있어서 추가했습니다.이왕이면 6高까지 고치자는 것이지요.』 -이 가운데 가장 시급히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금리는 당장 내릴 수 있고,정부의 규제도 마찬가집니다.임금은 구조적으로 얽혀 있어 장기적이고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합니다.물류비 절감은 정부의 투자와 규제완화로 가능합니다.』 -올 들어 수출이 많이 위축됐는데 우리 수출이 안고 있는 가장 큰 문제점은 무엇입니까.
『먼저 고가품은 품질.브랜드 지명도등에서 선진국에 밀리고 중.저가품은 가격면에서 후발개발도상국에 밀리는 이중고를 겪고 있습니다.둘째는 기계류 및 핵심부품의 수입의존도가 지나치게 높다는 점입니다.셋째는 환율.원자재가격등 외부환경 변 화에 지나치게 민감한 허약한 수출체질입니다.넷째는 노사관계의 경직성 때문에 기업이 구조조정.기술개발.자동화투자등 중.장기적인 투자를 하기 어려워 수출의 질적 고도화가 지연된다는 것입니다.』 -한국경제 전체를 볼 때는 어떻습니까.
『역시 고비용.저효율구조가 가장 큰 문제입니다.임금은 이미 고임금구조에 진입했고 금리.물류비용등도 경쟁국에 비해 크게 불리합니다.이를 어떻게 개선해 나가느냐가 당면과제입니다.』 -올해는 임금인상 문제등으로 노사관계가 시끄러웠는데 근본적인 해결책은 없겠습니까.
『기본적으로 정치권에서 잘못 출발했다고 생각합니다.경제가 성장하면 임금이 올라가는 것은 당연하지만 민주화가 되면서 정치권에서 인기에 매달려 노동자의 요구를 한꺼번에 들어준 게 문제입니다.그것이 10년,20년 뒤 국가경제에 미칠 영 향을 통찰해풀어줄 것과 말 것을 잘 가려야 하는데 당장의 인기에 치중하다보니 노사관계나 임금에 좋지 않은 쪽으로 갔습니다.모두 반성해야지요.』 -주5일근무제를 도입하는 기업도 있고 근로시간도 점차 짧아지는 추세인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지금은 허리띠를 졸라매야 합니다.개인이건 국가건 부가 아무리 축적됐다 해도 쓰기 시작하면 절대 많은 게 아닙니다.근무시간이 줄어드는 게 경제성장의 알맹이보다 너무 앞서 있어서는 안됩니다.요전에 리콴유(李光耀)전싱가포르총리를 만나 임금동결을 어떻게 했느냐고 물었더니 그게 바로 정치인이 할 일이라 하더군요.개인과 국가.사회 모두 생활의 질을 절도 있게 향상시켜 나가야 합니다.쓸데없이 허세 부리고 목소리 높이면 나중 일이 걱정됩니다.』 -정치권의 목소리가 경제를 좌우하는데 대해 우려하는 이들이 많습니다.바람직한 정경관계는 어떤 것일까요.
『민간주도형 경제가 돼야 합니다.노사관계만 해도 지금까지 경제논리로 해결된 게 없습니다.정부가 주도적 역할을 하되 민간주도 경제가 돼야 합니다.경제는 경제논리로 해결해야 한다는 점을밑바닥에 항상 깔고 나가야 합니다.』 -기업에서는 행정규제 완화가 피부로 느낄 만큼 안되고 있다는 지적이 많습니다.정부가 어떤 자세로 규제완화에 나서야 할까요.
『규제를 완화하면 어떤 의미에서는 정부내 엘리트그룹의 보람이줄어들고 지위를 낮추는 결과가 됩니다.이들 엘리트그룹의 반발이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클 것입니다.엘리트그룹이 너무 많으면 과다한 지출이 따릅니다.사람이 많으면 규제와 간 섭도 많아집니다.긍극적으로는 사람이 적어야 합니다.개인적으로는 공무원 대우를배로 높여 주고 수를 반으로 줄이는 게 좋다고 봅니다.방법은 어렵겠지요.』 ***공무원 半으로 줄여야 -기업쪽에서도 경쟁력강화를 위해 노력할 부분이 있지 않겠습니까.
『기업인 가운데는 사회적 사명감을 못 느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말하자면 이익의 노예가 돼 있는 거지요.기업가도 정신 차리고 전체 경제계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하며 스스로 반성하는 기회를 가져야 합니다.이제는 기업도 기업가정신을 발휘 함과 동시에국가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해야 합니다.』 -해외시장에 팔 물건이 없다는 지적도 많습니다.기업이 신제품개발에 소홀했던 점은 없습니까.
『사실입니다.정부도 비전을 갖고 당장의 이익에는 도움이 안돼도 신제품을 개발하도록 인센티브제를 마련해야 합니다.정부와 기업 양쪽에 다 책임이 있지만 정부가 분위기를 선도해야 합니다.
』 -21세기 우리 산업을 어떤 업종이 끌고 나갈지 걱정됩니다. 『걱정을 많이 하는데,이런 걱정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은 재도약을 위해 좋은 현상입니다.구체적인 전략은 별개 문제지만 컨센서스를 완전히 이뤄 강력한 정부방침을 정하고 민간도 같이 나아가야 합니다.』 -대미(對美)무역역조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개방압력은 여전한데 우리가 미국에 효과적으로 대응을 못하는 부분은 없습니까.
『미국의 정책을 보면 대부분 비즈니스 보이스(기업의 목소리)를 종합해 정책화한 것입니다.그러나 한국은 정부의 보이스를 기업이 따라갑니다.이런 점에서 두 나라가 확연히 구별됩니다.정책의 뿌리를 어디에 둬야 할지 생각해야 할 시점입니 다.』 ***OECD는 꼭 가입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입을 앞두고 있는데 가입하면 정말 좋은 겁니까.
『큰 꿈을 꾸려면 들어가야 합니다.OECD에서는 10년,20년 뒤의 정책들을 논의합니다.지금은 밖에 있으니까 정책이 결정된 뒤에야 논의하는데 선진국들은 우리보다 훨씬 빠르고 대비도 돼 있습니다.』 -기업의 해외투자가 크게 늘고 있는데 어떻게 보십니까.산업공동화(空洞化)에 대한 우려도 나오고 있구요.
『세계화시대에 제조업이 장기전략을 갖고 해외로 나가는 것은 대환영입니다.그러나 업계의 전략에는 세계시장을 상대로 하자는 적극적 전략과 비용을 줄이자는 소극적 전략이 혼재(混在)합니다.소극적 전략이 많다는 게 걱정됩니다.』 -남북경협이 많이 늘고 있고 의욕을 가진 기업도 많습니다.남북경협은 어떤 자세로 접근하는 게 바람직합니까.
『남북경협은 경제정책만으로 되는 게 아닙니다.정부보다 융통성있는 사고를 가진 기업인들이 정부를 코치해 주는 역할을 한다면상호보완이 될 것입니다.기업의 지각 없는 북한접근은 시정돼야 하지만 크게 보면 그런 부작용은 없을 수 없습 니다.북한의 개방이라는 큰 목표를 위해서도 부정적으로 볼 수만 없습니다.』 [정리=유규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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