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국 금융 위기 불 꺼주던 미국 지금은 그 소방서에 불이 난 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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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이나 증권사는 돈을 굴려 돈을 버는 ‘머니 비즈니스’를 하는 곳이다. 물론 두 기관이 영업하는 기법은 다르다. 은행은 예금으로 받은 돈을 대출하면서 생기는 마진을 주된 이익으로 삼는다. 증권사는 주식·채권·파생상품 등 금융상품을 굴려 이익을 창출한다.

새로운 영업 대상을 열심히 찾고 있던 두 기관 모두에 아주 돈 되는 금융 기법이 나타났다. 대출을 증권화하는 방법이었다. 영업 대상은 주로 주택담보대출이다. 주택담보대출을 해 준 은행은 보통 장기간 대출을 하게 되므로 오랜 기간 자금이 묶이게 된다. 이런 대출금을 묶어 증권으로 만들어 파는 기법이 나타난 것이다.

예컨대 1억원씩 100명에게 주택담보대출을 해 준 은행의 경우를 보자. 대출 총액이 100억원인데, 이 돈을 조기에 회수하면 추가 이익이 생긴다. 100억원의 대출을 서류상의 자회사에 넘겨 이 대출을 담보로 1억원짜리 채권 100장을 발행한다. 이 채권을 주택담보부증권(MBS)이라고 한다. 만일 100명의 투자자가 1억원씩 내서 이 채권을 사면 100억원의 수입이 생기고, 100억원은 서류상 자회사를 거쳐 은행으로 유입된다.

은행이나 모기지회사 입장에서는 대출을 해 주고 장기간에 걸쳐 이자를 받는 것보다 대출금을 빨리 증권으로 만들어 자금을 회수하는 게 낫다. 회수한 돈으로 다시 대출해 주거나 증권화하는 과정을 반복하면 그때마다 수수료 수입이 생겨 좋다. 투자은행들도 대출 담보 증권을 만들어 팔면서 수수료를 챙긴다. MBS의 신용등급을 매기고 보증을 서 주는 기관인 모노라인이나 보증을 서 주면서 직접 영업도 하는 프레디맥·패니메이 같은 모기지회사들도 돈을 벌게 된다. 결국 이 제품의 개발·판매 과정에 참여한 모든 금융회사가 이익을 보는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다른 금융회사들도 상대적으로 금리가 높고 안전한 이 증권을 투자 차원에서 사들여 이득을 봤다. 헤지펀드들도 마찬가지였다.

문제는 ‘대출→증권화→자금 회수→재대출’ 과정을 반복하는 과정에서 신용등급이 낮은 고객에게도 담보대출이 나가게 됐다는 것이다. 신용이 평균보다 떨어지는 ‘서브프라임’ 등급의 대출도 증권으로 변신해 유통된 것이다. 오르기만 하던 주택가격이 꺾이기 시작하자 비우량 대출부터 문제가 생겼다. 이자와 원금을 못 갚는 사람이 늘면서 대출이 부실화되자 이를 담보로 만들어진 증권도 부실화됐다. 담보부증권에 연루된 은행·증권·보증기관은 물론 이 채권을 사들인 펀드까지 부실화의 늪에 빠져들었다. 이게 바로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다.

미국은 과거 남미 외채위기와 동남아 금융위기 때 직접 나서 불을 꺼 주는 소방관 역할을 했다. 지금은 그 소방서에 불이 난 격이다. 멀리 떨어져 사는 주민(오일머니·중국 국부펀드 등)들까지 나서 양동이로 물을 퍼 나르지만 역부족하다. 달러 자금이 달리고 안전자산으로의 도피 현상이 나타나면서 우리나라도 역풍을 맞고 있다.

중국이 발 빠르게 금리를 내렸듯이 지금은 급한 불을 끌 때다. 우리도 금리 인하를 적극 검토하면서 자금시장 경색에 대비해야 한다. 외화 유동성 실태도 바로바로 파악해야 한다. 2400억 달러에 달하는 외환보유액을 일부 동원해 지원을 약속하는 립서비스만으로 외국인투자자를 포함한 시장에 긍정적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경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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