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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둥서 만난 北 인사] "밥가마·밀가루가 필요합네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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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 2003년 5월 13일 찍힌 용천 소학교 위성사진(上)과 폭발 사고 후인 27일 촬영된 사진. 미국의 상업위성 사진 전문회사인 디지털 글러브가 29일 안보 관련 인터넷 사이트인 글로벌 시큐리티에 공개했다. [디지털 글로브 제공=연합]

"밥가마(밥솥)하고 쌀 아니면 밀가루… 그리고 유리가 필요합네다."

29일 오후 중국 단둥(丹東)의 압록강 다리 앞. 한국에서 건너온 주사기.항생제 등 의료 구호품을 트럭에 싣고 북한으로 향하던 50대 초반의 북측 기관 인사는 약간 주저하더니 말을 던졌다. 그는 "재난 현장에서 국수를 쉽게 끓여먹을 수 있는 밀가루가 가장 필요하다"며, "폭발로 깨져버린 유리도 보충하는 게 시급하다"고 전했다.

이날 오전 9시(한국시간 오전 10시) 단둥 서남쪽 둥강(東港)에 300t의 구호품을 싣고 인천을 출발한 '단둥 페리'가 도착하자 한국의 구호단체 관계자들과 이를 받기 위해 나온 북측 인사들은 하루종일 분주하게 움직였다.

둥강에서 단둥으로 물건을 옮기던 한국정토회 박진하(43.여)이사는 "우선 의료용품이 시급하다는 말을 듣고 어제 급히 물건을 구해 오늘 가까스로 전달했다"며 "피해 규모가 엄청나 요구 품목이 자꾸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구호 활동도 활기를 띠고 있다. 한국정토회 외에 우리민족 서로돕기운동 본부와 굿네이버스, 어린이 의약품지원본부 등이 보낸 20피트짜리 컨테이너 20개 분량의 구호품도 이날 단둥에 도착했다. 라면.의류.담요.의료장비 등이 주종을 이뤘다.

하지만 구호 단체 사람들은 구호 물품이 신속하게 전달될 것 같지 않아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단둥시 정부에서 구호품을 급히 보내기 위해 신의주를 통행할 수 있는 차량들을 선점했다는 소식이 알려진 뒤부터다. 게다가 5월 1일에는 일주일간에 이르는 중국의 '노동절 휴가'가 시작돼 통관 업무가 정지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차량을 구하는 게 지금으로서는 가장 급하다. 노동절 휴가에 통관 업무를 할지 안할지를 중국 정부가 명확하게 밝히지 않고 있다. 구호품 전달이 많이 늦어질 수도 있어 걱정이다." 압록강 북.중 관문인 중국 단둥세관 앞에서 화물 통관 업무를 돕던 단둥 페리사 김정동(金正東.43)이사의 말이다.

한 북측 인사는 "의약품이 사고 발생 직후 많이 들어오기는 했지만 환자치료에는 턱없이 모자란다"며 "항생제와 화상에 바르는 연고, 주사기, 점적관(點滴管:링거 줄)이 크게 부족하다"고 말했다.

단둥=유광종.임장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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