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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나폴레옹 대관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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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오병상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 소장품 가운데 관람객을 압도하는 걸작으로 '나폴레옹의 대관식'이 흔히 꼽힌다. 전시실 한쪽 벽을 완전히 도배한 듯한 초대형(가로 979㎝, 세로 621㎝)인 데다 초상화의 완결판이랄 정도로 많은 인물이 살아있는 듯 생생하다. 19세기 신고전주의 대표화가인 자크 루이 다비드가 1804년 노트르담 성당에서 열렸던 대관식을 3년에 걸쳐 재현해 냈다.

흥미롭게도 그림은 나폴레옹이 교황으로부터 황제의 관(冠)을 받는 장면이 아니다. 월계관을 쓴 나폴레옹이 아내 조세핀에게 황후의 관을 씌워주는 모습이다. 교황은 나폴레옹의 뒤에 앉아 있다. 월계관은 로마 황제의 관, 즉 승리와 평화의 상징이다. 교황으로부터 황제 즉위를 인증받는 행위는 중세유럽을 통일한 샤를마뉴 황제의 등극을 연상케 한다.

근대 프랑스의 영광을 표현하고자 한 그림은 고대 로마와 중세 프랑크왕국 황제의 상징을 차용한 셈이다. 유럽인들에게 카이사르와 샤를마뉴의 공통점은 '하나의 유럽'을 성취한 영웅이란 점이다. 곧 나폴레옹이 꿈꾸는 유럽.통일의 꿈이다. 이는 '팍스 로마나(Pax Romana)', 제국의 평화와 번영을 재현하자는 꿈이기도 하다.

샤를마뉴 이후 분열된 유럽의 1200년은 음모와 광기의 역사였다. 그 피날레를 장식한 인물은 '제3 제국'의 히틀러였다. 주위의 평가와 무관하게 히틀러 스스로는 유럽의 통일.평화.번영을 꿈꿨음이 사실이다. 오른팔을 비스듬하게 뻗쳐 올리면서 외치는 '하일, 히틀러!'란 구호는 '헤일, 카이사르!'의 변용이다. 히틀러가 프랑스에 SS지부를 만들면서 '샤를마뉴 사단'이라 부른 것도 같은 맥락이다.

히틀러의 망상.폭력에 치를 떨었던 유럽인은 제2차 세계대전의 반성 끝에 평화적인 통일 방안을 찾았다. 경제적 접근이다. 1951년 유럽석탄철강공동체(ECSC)로 시작됐다. 반세기를 넘겨 내일이면 마침내 동.서유럽이 하나의 EU로 통합된다. 프랑스 외무장관은 "오늘의 역사는 '위대한 한 가족 유럽'이란 나폴레옹의 비전을 증명해줬다"고 평가했다. 카이사르와 샤를마뉴의 비전, 곧 유럽인의 꿈이다. 많은 문제에도 불구하고 평화적으로 얻어져 더 소중해 보인다.

오병상 런던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