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틀랜타올림픽 한국 금메달 1호 심권호의 인간승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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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탱크처럼 밀어붙이는 저돌성,찰거머리같은 끈질긴 승부욕,강철보다 강한 인내심-」.
올림픽 금메달은 우연히 이뤄진게 아니었다.이같은 요소를 밑바탕에 깔지 않으면 도저히 일궈낼 수 없는,위대한 승리였다.
한국의 애틀랜타올림픽 금메달 1호이자 지난 48년 런던대회 첫 참가 이후 올림픽 통산 1백번째 메달의 주인공이 된 심권호(沈權虎.24.주택공사).그는 마침내 머나먼 이국 땅에서 「큰일」을 해냈다.자랑스런 한국인으로서 긍지를 심었다 .레슬링 48㎏급은 한국과 인연이 없었다.84LA(손갑도),88서울(이상호),92바르셀로나올림픽(김종신.권덕용)에서 그 누구도 정복하지 못했던 비운의 체급.이제 그가 피맺힌 한을 마침내 풀었다.
沈이 레슬링 매트와 인연을 맺은지 11 년만의 일이다.
경기도 성남시에서 가난한 보일러공의 맏이로 태어난 그는 어릴적부터 운동을 좋아했다.그래서 그의 아버지 심귀남(51)씨는 沈이 성남 제2초등학교 3년때 유도를 시킬까 하다가 태권도를 시켰다.마침 살던 동네에 태권도 도장이 있었기 때 문이다.그의배짱과 기질은 바로 이때 길러졌다.
沈이 레슬링과 첫 인연을 맺은 것은 성남 문원중에 입학하면서부터.당시 이 학교 레슬링부 감독이었던 박동우교사의 추천이 그의 인생을 바꿨다.
처음 자유형을 시작한 그가 모험을 감행한 것은 한체대 1년 때인 92년말.주변의 권유로 자유형을 버리고 그레코로만형을 선택한 것이다.그레코로만형은 상체만 잡고 하는 경기이기 때문에 새로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는 절치부심했다.그 결과 沈은 대학3년 때인 93년 당시 국내 1인자로 91세계선수권 우승자인 선배 권덕용을 꺾으며 태극마크를 달았다.93세계선수권(스웨덴 스톡홀롬)에 출전한 그는초반 승승장구했으나 결국 「천적」을 만났다.바로 러시아의 굴리예프였다.
그는 결승 길목에서 굴리예프에게 뼈아픈 패배의 맛을 봤다.동메달이었다.
그러나 그는 마음을 다시 다잡았다.첫술에 배 부를 수 있으랴.올림픽보다 아시안게임부터 정복해야 했다.94히로시마 아시안게임에서 첫 금메달을 따낸 그는 자신감이 생겼다.그 누구도 이길수 있다는 강한 신념을 갖게 됐다.
김상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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