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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쓰는가정문화>4.무계획이 상책인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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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회사원 김성훈(38.서울노원구상계동)씨 부부와 1남2녀는 매주 일요일 가장의 『무조건 타라』는 한마디에 즉흥여행을 떠난다.가까운 송추나 경춘가도로 무작정 방향을 잡지만 항상 중도에 돌아오기 일쑤.『어쩌면 우리같은 사람이 그리 많은 지 주차장으로 변한 차도에서 시간낭비만 하다가 칭얼대는 아이들 등쌀을 뒤로 하고 U턴해 돌아오곤 하지요.』 그래도 「주말정도 보내는데계획을 세우느냐」는 생각에 여전히 일요인 오전에는 낮잠을,오후에는 즉흥여행을 하게 된다는 김씨다.
또 다른 회사원 주원식(39)씨 가족은 3년전부터 매년 연말이면 서울 근교 절을 찾아 하룻밤을 보낸다.온가족이 머리를 맞대고 「우리집 올해의 베스트10」을 선정하고 내년도 가족사업(?)몇가지를 정하기 위해서다.하지만 주씨는 『지난 해말 동창회에서 이 「가족 송년모임」을 얘기했다가 「별난 사람」이란 핀잔만 받았다』며 뭔가 미리미리 계획을 세운다는 것에 익숙지 않은우리 사회의 한 단면을 보는 것같았다고 말했다.
얼마전 시부모님 칠순을 치른 주부 김선희(38.서울용산구이태원동)씨의 경험도 마찬가지.지난해부터 자식들끼리 이것저것 나누어 준비하자고 제안했지만 각자 생활이 바쁜 탓인지 코앞에 닥쳐허둥지둥 치르게 되더라는 것.좀처럼 개선되지 않 고 있는 예측불가능한 정치,변화무쌍한 경제환경은 가정단위로 내려가 즉흥적이고 무계획한 생활방식을 낳고 이는 다시 사회 전반적인 분위기로파급되는 악순환의 고리를 이루고 있는 셈이다.
최근 독일에서 귀국한 주부 박수희(37.서울은평구 미성아파트)씨는 유럽여행때 가장 부러운 것중 하나가 휴양지에서 그 다음해 예약을 미리 받는 「철저한 계획주의」였다고 털어놓는다.하지만 이같은 사회분위기 조성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 은 미리 계획하고 예약한 사람은 할인혜택등 이득을 볼 수 있고 설사 중간에 계획이 바뀌더라도 얼마든지 다른 선택이 가능하다는 사회적 신뢰감이다.
그런 면에서 「아무리 계획을 세우고 살려 해도 아주 작은 부분부터 이를 가로막는 경우가 너무 많다」는 목소리가 높다.매년달라지는 각급 학교 방학 날짜,그 전날 알림장을 보고야 알 수있는 초등학생 준비물.비행기표를 예약해놓고 아 무 연락없이 공항에 나타나지 않아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예약부도율 역시선진국의 두배꼴인 15%(성수기 때는 7%)선에 이른다.이렇다보니 매사가 무계획적이고 즉흥적이다.가계부 하나만 해도 쓰는 사람의 비율은 우리(92년 56.
7%)가 일본(92년 47%)보다 높지만 일본 주부의 대부분이 장기예산계획에 따라 생활하는 반면 우리 주부들은 예산관리는하지 않고 지출만 기록하는 경우가 절반이 넘는다는 통계가 나와있다. 시(時)테크 주창자 윤은기(IBS컨설팅 대표)씨는 『업무시간에는 그런대로 꼼꼼한 계획을 세우면서도 집안일이나 주말.
휴가등에는 계획 개념이 희박한 사람이 많다』고 지적한다.한국사회가 정신적 후진국을 벗어나려면 가정에서부터 주말.휴가 .생애계획을 세우고 실천하는 장기적인 시각의 생활습관을 길러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덕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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