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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각'은 밋밋해…사각관계 드라마 쏟아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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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희경.조미령.손현주.최철호. 지난 26일 방송을 시작한 MBC 아침 드라마 '열정'의 네 주인공이다. 진희경과 최철호, 조미령과 손현주가 각각 부부. 그러나 예측 못할 사랑의 화학작용은 끝내 짝을 바꾸게 만든다. 두 쌍이 모두 이혼하고, 파트너를 교대해 다시 가정을 꾸린다.

제작진이 '패치워크 패밀리'(조각보 가족)라고 부르는 이색 구도다. '삼각'은 가라-. TV 드라마에서 애정관계의 각(角)이 변하고 있다. '삼각관계' 대신 네 명의 남녀가 얽히고 설킨 애정사를 보여주는 '사각관계'가 대세다. 우리 사회의 애정 풍속도가 복잡해짐에 따라 드라마도 '구조조정'에 나선 것일까.

◇봇물 이루는 '사랑의 사각'=현재 방영 중이거나 최근 종영한 드라마에서 사각구도를 찾는 건 어렵지 않다. 얼핏 추려도 10여건이다.

SBS '2004 인간시장'. 김상경.박지윤이 김상중.김소연과 대립하는 가운데, 김상경.김소연, 김상중.박지윤이 새로운 사랑의 사각을 형성했다. KBS '4월의 키스'에선 수애를 놓고 조한선과 이정진이 신경전을 벌이고, 여기에 소이현이 끼어든다. 소이현은 두 남자 모두에게 마음이 흔들린다. 그런가 하면 '백설공주'(KBS)에서도 연정훈.이완.김정화.오승현이 복잡한 애정관계를 보이고 있다. 이완의 정혼녀(조윤희)까지 등장, '5각관계'로까지 전선이 확대됐다.

특히 지난 14일 종영한 MBC '사랑한다 말해줘'에선 김래원.윤소이, 김성수.염정아 두 커플이 엇갈린 사랑을 한 뒤 상대를 바꿔 결혼했다. 지난달 종영한 '발리에서 생긴 일'(SBS)을 비롯해 '청혼'(SBS)'불새'(MBC)'작은 아씨들'(KBS) 등에서도 직.간접적인 사각은 발견된다.

◇삼각(三角)도 변한다='진실''애인''푸른 안개''모래성''신데렐라''별은 내 가슴에'…. 삼각관계는 시청률을 보장하는 가장 안정적인 구도였다. 또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가 상징하듯 '여.남.남'구도가 주종인 서양과 달리 우리의 경우 '남.여.여'구도가 주효했다.

하지만 이젠 어느 쪽이 우세하다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여.남.남' 구도가 즐겨 채택된다. '가을동화''겨울연가''아름다운 날들''회전목마''러브레터''햇빛 쏟아지다'…등이다. '남.여.여'구도에서 원수지간이었던 여자끼리의 관계도 변했다. '태양의 남쪽''완전한 사랑'(SBS),'로즈마리'(KBS) 등에선 한 남성과 두 여성의 공존을 그렸다. '태양의 남쪽'에서 최민수와 동거해온 유선은 죽음을 앞두고 최명길과 포옹하며 자기 남자를 부탁한다.

◇"애정관계는 사회상의 반영"='사랑한다 말해줘'의 기획에 관여한 JS 픽쳐스의 신승우 PD는 "지나친 우연을 만들어야 하는 삼각관계가 시청자들에게 더 이상 어필하지 않는 것 같다"고 말한다. 작위적인 설정이 진부한 느낌을 준다는 것이다. 작가들도 같은 생각이다. '백설공주'의 구선경 작가는 "요즘 시청자들은 단선적 이야기보다 복잡한 이야기를 좋아하는 것 같다"며 "운명적인 장애, 집안의 반대 등을 넣어야 하는 삼각관계와 달리 '사각'은 인물간의 심리와 갈등을 다채롭게 표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점점 다각(多角)이 돼 가는 드라마 속 애정관계가 우리 사회 분위기를 반영한 것은 아닐까. '열정'의 한철수 PD는 "전통적인 의미에서 한국의 가족은 붕괴하는 중"이라며 "도덕적 잣대를 바꿀 때가 됐다"고 말한다. 주철환 이화여대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는 "자유로워지고 있는 현실의 연애상을 드라마가 표현하는 것이지만 이 역시 '이렇게까지…'라는 말이 나오는 순간 쇠락의 길을 걸을 것임을 알아야 한다"며 사각관계의 남용만은 경계했다.

이상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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