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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라디오 '밤을 잊은…' 내달 8일 기념 방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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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을 잊은 그대에게'(이하 밤그대)는 라디오를 끼고 살았던 학창시절 한결 같은 소중한 친구였습니다. 불면의 밤을 함께했던 DJ 송승환씨가 기억에 남습니다. 난생 처음 수줍은 소통을 하기 시작할 무렵 연인처럼 다가온 DJ였으니까요. 가을날 찾아들었던 외로움을 대책없이 꾹꾹 눌러 써 엽서를 부치고 기다리고…제 이름 석자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던 그 짜릿함을 지금도 잊을 수 없네요. 고맙습니다. 오랜 세월 함께 해주셔서."('밤그대'인터넷 게시판에서 청취자 서희영)

"퇴근이 늦은 언니를 기다릴 때 밤마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던 '밤그대'. 시그널 뮤직부터 정말 좋았습니다. 어느새 40주년이군요. 저 역시 30대 후반이 되었답니다."(성지현)

"저는 진희 누님(탤런트 박진희)이 DJ 할 때부터 하루도 거르지 않고 들어온 17세 '광팬'입니다. 지금 40주년이지만 50주년, 100주년까지 갔으면 싶네요. 제가 늙어도 지금 이 순간을 떠올릴 수 있게. 되돌릴 수 없는 이 순간으로 다시 빠져들게 해줄 '밤그대'를 만났으면 합니다."(이명수)

청소년 대상의 심야 라디오 프로그램 '밤을 잊은 그대에게'(KBS 해피FM 수도권 106.1 MHz)가 다음달 9일이면 방송 40주년을 맞는다. TBC(동양방송) 라디오의 전신이었던 라디오서울이 1964년 개국할 때 첫 전파를 쏜 뒤 방송사 통폐합 후에도 계속돼 오늘까지 이어졌다. '밤그대'와 함께 라디오서울의 개국 프로그램이었던 운전사 대상의 '가로수를 누비며'는 몇년 전 폐지됐기에 '밤그대'가 현존하는 최고(最古) 프로그램이다.

'밤그대'는 우리 라디오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한꺼번에 보여주는 산 역사다. TV가 귀하던 시절 라디오 DJ는 밤을 잊은 사람들과 소곤소곤 대화하던 연인이자 친구였다. 불과 10여년 전까지만 해도 애청자들은 연애편지 쓰듯 수줍게 엽서를 보낸 뒤 애타게 답장을 기다리며 스피커에 귀를 기울였다. '문세 오빠''승환 오빠'가 자기 이름을 불러줄 때의 그 짜릿함이란….

30~40대 여성이라면 누구나 엽서 한장에 얽힌 추억 한자락쯤 갖고 있을 터다. 송승환은 학창시절 양희은이 진행하는 '밤그대'를 들으며 자랐고, 이 추억을 간직한 채 80년대 '밤그대'의 DJ로 돌아왔다. 이렇게 남학생들 중에도 열렬한 팬이 있었지만 더 적극적이었던 건 볼펜에 침 묻혀가며 정성스레 엽서를 채우던 소녀들이다.

그래서였을까. 10년 전까지만 해도 '밤그대'의 DJ는 대부분 남자 차지였다. 양희은의 뒤를 이어 74년 DJ를 맡았던 서유석을 시작으로 배한성.황인용.송승환.이문세.변진섭.김호진 등 90년대 초반까지 '밤그대'의 DJ박스는 굵직한 남성 목소리로 울렸다. 하지만 인터넷이 널리 보급되면서 온라인으로 사연을 보내는 남자 청취자들이 늘자 이들을 겨냥해 DJ도 여자로 교체됐다. 비록 단명하긴 했지만 김지수.김정은.황수정도 '밤그대'출신이고, 2002년 박진희에 이어 지난해부터 신애라가 맡고 있다.

숱한 DJ를 거치면서도 변치 않은 건 '밤을 잊은 그대에게'라는 타이틀만이 아니다. 트럼펫 연주가 잔잔하게 흐르며 프로그램 시작을 알렸던 '밤그대'의 시그널 음악인 장 폴 보렐리의 '바다의 협주곡' 역시 계속되고 있다.

'밤그대'의 이종만 책임 PD는 "시그널 음악이 너무 낡은 느낌이라 한번 바꿔보려고 해도 귀에 익어 편하게 생각하는 청취자들이 워낙 많아 바꾸기가 쉽지 않더라"면서 "그래서 전통이 무서운 모양"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프로그램 내용은 시대와 호흡하느라 많이 변화했다. 영어가사가 나오는 팝송을 들어야 우쭐하던 70~80년대는 팝송 위주로 선곡했다. 하루에 외국곡 한두곡을 양념으로 넣는 요즘 선곡표와 비교할 때 달라진 우리 가요의 위상도 확인할 수 있다.

KBS는 '밤그대' 40주년을 기념해 최근 CD를 발매했다. 신애라를 비롯한 현역 DJ들과 PD, 대중음악 평론가, 청취자들이 고른 80~90년대 우리 가요 34곡을 두장의 CD에 담았다. 또 다음달 8일 오후 6시 KBS홀에서는 변진섭.신애라 진행으로 특집 공개방송을 한다.

안혜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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