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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보균의 세상 탐사] 권력 암투와 의심 피어 오르는 김정일 뇌졸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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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SUNDAY

김정일 중병 사태는 우리에게 무엇인가. 그것은 이명박 정권에 어떤 의미로 다가갔을까. 한반도의 새로운 위기인가, 역사의 특별한 기회인가.

중국 지도층은 그것을 북한 체제 붕괴의 전주곡으로 파악했을까. 그들은 오래전부터 압록강 국경에 군대를 배치했다. 평양의 급변 상황에 대비해왔다. 베이징의 차분한 접근은 노련미를 풍긴다. 북한 사람에게 이런 장면들은 불편한 진실이다. 주민들은 자기네 위대한 영도자의 돌발 사태에 어떻게 반응하고 있는가.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건강관리에 실패했다. 그의 나이는 66세다. 남한에선 젊은 노년이다. 북한 기준으론 늙은 노인이다. 북한 남자의 평균수명(61.4세)을 넘겼다. 지난 8월 중순 쓰러졌을 때 원인은 뇌졸중이라고 한다. 노인이 풍을 맞았다. 그는 장수한 아버지(김일성 주석· 82세 사망)와 체형이 다르다. 당뇨와 순환기 질환도 앓았다.

그가 회복 중이라고 한다. 그러나 건강에 대한 신뢰를 되찾기는 어렵다. 통치의 세계에서 건강은 결정적 요소다. 절대 권력의 공간에선 더욱 미묘하다. 건강 이상은 정권 장악력에 깊은 상처를 낸다. 권력 암투와 의심이 생겨난다. 후계자 선정은 북한의 긴박한 과제가 됐다. 북한식 현지 지도는 수령과 인민의 소통 수단이다. 김 위원장의 통치 현장 방문은 크게 줄어들 것이다. 그 축소와 변화는 북한 내부에 민감한 충격파를 던질 것이다. 김정일 체제는 쇠락의 길로 들어섰다.

북한 경제는 거덜난 지 오래다. 가난은 인간의 영혼을 부순다. 나라도 마찬가지다. 수모와 핍박을 당한다. 베이징에 가보면 안다. 중국인 대다수는 북한을 무시한다. 빈곤은 북한을 중국·베트남과는 다른 기이한 나라로 만들었다.

같은 공산 국가지만 비전과 가치가 다르다. 그들의 진정한 우방은 없다.

남한 내 친북좌파 세력은 약화됐다. 북한의 좌절과 고민이 깊어지는 또 다른 이유다. 이명박 정권의 등장 때문만은 아니다. 남한의 젊은 세대가 변했다. 한때 김정일 스타일은 젊은층 일각에 매력으로 다가왔다. 통 큰 정치, 화술, 복장은 호기심을 낳았다. 그러나 일시적 유행으로 끝났다. 그 정도 소재는 남한 젊은 세대의 실용적 역동성을 만족시킬 수 없다. 오히려 북한 주민의 굶주림과 인권 참상이 그들 대다수에게 현실감 있게 다가갔다.

북한의 권력 공백 징조는 없다고 한다. 병상의 김 위원장은 상황 반전의 묘수를 찾으려 할 것이다. 권력 건재의 극적 드라마를 생각할 것이다. 정권은 긴급 상황일 때 외부와 긴장 수위를 높인다. 내부 결속을 위해 그 관심을 외부로 돌리려 한다. 이 때문에 ‘8·26 핵시설 불능화 조치의 중단’처럼 강경하게 나온다.

이명박 정권은 북한 체제의 강점과 취약점을 재점검해야 한다. 북한은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는다. 핵 존재의 영향력을 알고 있어서다. 북한이 핵을 버리는 순간 위상이 달라진다. ‘강성 대국’ 통치자에서 ‘빈민 대국’ 지도자로 떨어진다.

미국과 한국이 핵 포기 대가로 경제 원조를 약속해도 본질은 달라지지 않는다. 이번 사태로 핵무기 집념은 더욱 강해질 것이다.

햇볕정책의 효험은 제한적이다. 이솝우화의 햇볕 비추기는 기습적이어서 성공했다. 그러나 우리의 햇볕정책은 의도가 노출됐다. 북한의 개혁 기피증을 고치지 못했다. 이 대통령은 “취지는 좋으나 결과는 못 미쳤다. 우리만 햇볕에 옷을 벗었다”고 평가했다. 지금 상황에서 그 인식은 돋보인다.

미국·중국·일본·러시아는 북한의 상황 변화를 선점하기 위한 경쟁에 들어갔다. 북한은 벼랑끝 전술의 유혹을 느낄 것이다. 그 전술은 협상 초보자나 인내심이 없으면 불패의 위력을 발휘했다. 이 대통령은 결정적인 선택에 대비해야 한다. 그러면서 역사와 대화해야 한다. 북한 사태는 어떤 경우에도 대한민국의 문제다. 우리가 기득권을 갖고 있다.

박보균 중앙일보 대기자 bgpar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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