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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비가스 루나감독의 "달과 꼭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2면

비가스 루나 감독은 고분고분하지 않다.『하몽하몽』의 도살적인분위기도 그랬지만 『달과 꼭지』에서도 그는 상식의 안전핀이 빠져버린 인물들의 사랑이야기를,가령 「내일 지구가 망해도 나는 지금 한편의 포르노 영화를 보면서 촌음의 순간을 즐기리라」는 태도로 그린다.
그래서 때때로 테테와 미겔.모리스는 세인들의 현실원칙 바깥에나가 에로티시즘과 더불어 발가벗고 뛰논다.하지만 『달과 꼭지』는 관능에 관한 영화가 아니다.관능의 유희에 관한 영화며 유희를 객관화함으로써 세계를 다시 보게끔 연습시키는 영화다.그 연습을 위해 감독은 우리가 흔히 보아온 애정의 구도를 슬그머니 뒤집어 놓는다.이를테면 아름다운 여인 에스트렐리타를 가운데 두고 경쟁을 벌이는 세 남자의 면면은 유년에서 청년.노년기의 남성성을 대표한다.이들은 너무 어리거 나 너무 늙음으로써 통속적인 삼각관계의 정상성(?)을 벗어난 인물들이다.자연히 에스트렐리타는 아내이면서 딸이 되고,애인이면서 누나가 되고 또 어머니가 된다.요컨대 그녀는 여성성으로 상징되는 모든 역할을 떠맡는것이다. 여기서 초점은 이 황금빛 욕망의 군상을 통한 에로티시즘의 복권인가.표면적으로는 그러하지만 나에겐 스크린 한귀퉁이에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하찮은 일상,보잘 것 없는 존재의 상징이더 중요하게 비친다.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줄창 세레 나데를 부르지만 애틋하다거나 사랑스럽기는커녕 미욱하게만 보이는 미겔의집념이랄지,엄지발가락을 강렬하게 빨아대는 에스트렐리타의 기괴한취미,관객 앞에서 힘차게 방귀를 뀌어대는 모리스의 직업등 저속함.비천함.불경스러움으로 취급받던 쾌락 의 육두문자를 감독은 거침없이 노출시킨다.이건 귄위와 질서체계가 무시한,그러나 결코무시될수없는 육체적 본성의 권리장전이다.
물론 이를 읊조리는 감독의 표정은 『하몽하몽』때처럼 다소 유치한 구석이 있는게 사실이다.달과 젖,비와 눈물,탑과 수도꼭지,오토바이라는 성적인 메타포는 진부하다.그럼에도 이들은 동화적상상력과 포르노그라피적 발상법을 활기넘치게 충돌 시켜준다는 점에서 소중하게 보인다.
테테의 개구리는 이 모든 유희를 함축적으로 암시한다.비가스 루나는 꼬마 테테처럼 짓궂으면서도 천진한 표정으로 개구리를 관객에게 선사하고,개구리는 보는 이에 따라 징그럽거나 하찮게 또는 귀하게 대접받는다.영화는 등장인물들의 이 기이 한 편력을 담은 유리병같다.투명하게 욕망의 세상을 드러내는.
김정용<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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