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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보다 쿨한 인간관계 뒤지지만 靈性에선 앞서”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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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호 22면

생활협동조합으로 잘 알려진 한살림의 ‘모심과 살림 연구소’ 이근행(43,사진) 사무국장은 지난 10여 년간 국내외 생태마을을 두루 둘러보며 연구해 온 이 분야의 전문가다. 9일 서울 장충동의 모심과 살림 연구소 사무실에서 이 사무국장을 만났다.
-‘생태’를 강조한 공동체 마을은 언제 만들어졌다고 볼 수 있나.
“유럽은 68운동 등 1960~70년대의 정신적·문화적 변혁기를 거치며 공동체 마을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미국에서도 70년대 주로 히피운동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졌다. 30여 년의 시간이 흐르다 보니 어느 정도 안정된 모습을 갖추게 됐고, 처음보다 환경이나 생태에 대한 인식이 좀 더 뚜렷해졌다. 반면 우리나라는 80년대 초반에 생태주의와 결합한 도농 공동체운동이 시작된 이래 90년대를 넘어서면서 생활협동조합운동과 한살림운동 등으로 발전했다. 마을의 형태로 나타난 건 90년대 중반 이후다. 그 전엔 가난과 민주화 등 더 큰 당면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생태공동체운동 연구가 이근행씨가 보는 국내 생태마을

-우리나라 생태마을의 성격을 해외와 비교해 본다면.
“서구의 공동체마을을 가 보면 참 깔끔하다. 외면적인 것뿐 아니라 사람들의 관계도 그렇다. 우리보다 상대적으로 긴 근대화 과정에서 ‘개인화’된 삶이 일단 안착된 뒤 그것에 대한 회의에서 시작된 공동체운동이기 때문에 개인적인 삶에 대한 존중과 서로에 대한 신뢰가 맞물려 있다. 한마디로 관계가 ‘쿨’하다. 반면 우리는 아직 가부장적인 사회 관계가 완전히 정리되지 않은 채, 특히 농촌은 전근대적인 요소가 여전히 남아 있는 상태에서 공동체운동이 시작됐다. 그래서 사람 사이의 관계도 좀 ‘끈적끈적’한 면이 있다. 대신 우리나라 사람은 종교적 성향이 강해 성찰이나 영성 등에 대한 인식이 보다 앞선 측면이 있다.”

-일부 생태마을을 보면 입주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활기를 찾기 힘든데.
“정착 단계에는 정말 오랜 인내와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종종 앞에서 힘있게 이끄는 주도적인 인물의 ‘카리스마’가 필요할 때도 있다. 의욕적으로 시작했지만 ‘뒷심’이 약해 흐지부지된 마을들을 보면 그런 면이 부족하다. 반면에 한두 사람의 지도자에게 지나치게 의존하면 그것도 공동체에 대한 참여의식을 약화시킬 수 있다. 윤구병 선생의 변산공동체나 김진홍 목사의 지리산 두레 마을은 그런 면을 극복하지 않으면 성공적인 확장·지속이 어려울 수 있다.”

-생태마을이 성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유기농법을 이용하는 농촌 마을이라고 해서 모두 생태마을로 볼 수 없는 것은 생태공동체운동이 단순히 ‘옛날 생활방식으로의 회귀’를 뜻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개인의 삶뿐 아니라 남녀관계 등에서 가부장적 질서를 지양하고 환경·생태에 대한 명확한 인식을 공유하는 등 사회를 변화시키려는 노력이 함께 따라야 한다. 또 공동체 고유의 비전을 명확히 갖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한 세대의 실험이나 시도로 끝나지 않는 ‘지속 가능성’을 갖게 된다. 10여 년밖에 되지 않은 우리나라 생태마을들이 과연 한 세대를 넘겨 유지될 수 있는지 좀 더 지켜봐야 한다.”


이근행씨는 '야생초 편지'의 작가 황대권씨와 함께 2001년부터 ‘생태공동체운동센터’를 운영해왔다. 2006년에는 성공회대 NGO대학원에서 ‘한국 공동체운동의 형성과 전개에 관한 연구’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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