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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대화’ 릴레이 인터뷰 ③ 봉은사 명진 스님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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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호 03면

깨우침엔 파격이 따르는 것일까. 명진(58·사진) 스님은 깨우침에 방해되는 것에 무자비한 파격적 표현법을 썼다.

“불교가 부처를, 기독교가 예수를 못 보게 한다”

“옛 중국에 운문선사가 있었습니다. 그는 모든 사람이 석가모니 부처님의 탄생을 찬양할 때 이렇게 말했지요. 내가 그때 그 자리에 있었다면 방망이로 한 방에 (석가모니를)때려 죽여서 주린 개에게 던져주어 세상을 태평케 했을 것이다.”
9일 오후 서울 삼성동 봉은사 경내. 스님은 따끈한 차를 따라 주면서 ‘무자비의 역설(逆說)’로 입을 열었다.

“제가 5년 전 서울 상지회 수녀원에서 이 이야기를 들려줬어요. 진리를 깨우치려면 자기 종교의 도그마를 깨야 한다고 했지요. 불교 때문에 오히려 부처를 못 보고, 기독교 때문에 또한 예수를 못 보면 그게 도그마라고요. 그리고 물었죠. ‘당신들이 만일 예수님에 대해 운문선사처럼 얘기했다면 교단에서 가만히 있겠는가’라고요.”

명진 스님과의 만남은 이명박 대통령이 불교계에 “마음을 상하게 해 심히 유감”이라고 국무회의에서 발언한 지 다섯 시간쯤 지나 시작됐다. 그가 주지로 있는 강남 봉은사는 종로 조계사, 우이동 도선사와 함께 서울에서 제일 큰 절이다. 강남 금싸라기 땅 6만6000㎡(약 2만 평), 재적 신도수 20만 명, 2007년 시주액이 105억원인 대형 사찰이다. 명진 스님의 본색은 선승이다. 2006년 말 주지로 부임한 뒤 ‘산문 밖을 나가지 않는 1000일 기도’ ‘사찰 재정 공개’ ‘불전함 신도 관리’라는 3대 조치를 단행해 불교 개혁의 상징 인물로 떠올랐다. 일요일 오전 11시 정례 법회엔 정통 사찰에선 드물게 1000여 명이 넘는 인파가 몰린다. 이명박 정부의 이른바 ‘종교 편향’을 가장 강렬하게 비판해 왔고, 불교 대중에 미치는 영향력이 크다.

중앙SUNDAY가 ‘종교 대화’ 릴레이 인터뷰 세 번째 상대로 명진 스님을 택한 건 이런 배경 때문이었다. 첫 번째 인터뷰는 성공회 김광준 신부(8월 31일자), 두 번째는 뉴라이트 운동을 하는 두레교회 김진홍 목사(9월 7일)였다. 김 목사는 “개신교가 한국 불교의 내공을 배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래서 그것부터 물어봤다.

-한국 불교의 내공이 얼마나 대단한가요.
“내공요, 그게 뭐 있겠습니까. 대신 이렇게 말해보죠. 기독교는 굉장히 외향적인 종교 아닙니까. 절대적인 신, 예수의 대속과 부활을 믿는 신앙체계죠. 한마디로 믿음의 종교입니다. 반면 불교는 물음의 종교입니다. 어떤 게 ‘참부처’인가, 어떤 게 ‘참나’인가를 묻습니다. 예를 하나 들까요. 하루는 단하선사가 법당 안에서 잠을 자다 추위에 잠을 깼어요. 법당 한가운데 있는 목불상을 쪼개서 불을 피웠죠. 아침에 난리가 났습니다. 주지 스님이 ‘어떻게 부처님을 쪼개 군불을 땔 수 있나’ 호통을 쳤어요. 단하선사는 태연하게 ‘사리가 나오는지 보려고 불을 땠다’고 답했지요. 주지가 ‘목불상에서 무슨 사리가 나오느냐’고 하자 단하선사는 그 자리에서 ‘사리도 안 나오는 게 무슨 부처냐’고 되물었어요. 철불은 용광로를 견디지 못하고, 목불은 불을 견디지 못하며, 토불은 물을 견디지 못하지 않습니까. 불교가 구하는 것은 오직 자기 마음속에서 ‘참나’를 찾는 것입니다.”

-한국 불교가 정말 깨달음을 추구하고 있습니까. 만해 한용운의 불교유신론(佛敎維新論) 이래 불교의 혁신은 미미한 것 아닙니까.
“지금의 한국 불교는 과도기입니다. 서양에서 들어온 기독교의 공격적인 선교가 한국 불교에는 부담이자 위협이 되고 있습니다. 불교는 원래 자기 내면의 세계로 깊이 천착하는 것인데 기독교의 성장에 위협을 느끼면서 한편으로는 기독교화하고 있습니다. 법당이 도회지로 내려오고, 포교당으로 형태가 바뀌죠. 원래 불교에 없던 찬불가도 그런 것 중 하나입니다. 기독교처럼 외향적으로 나가다 보니 한국 불교는 자기 정체성을 많이 잃고 있습니다.”

-종교 간 공존의 조건은 뭡니까.
“내 것만 옳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래야 다른 것을 인정할 수 있겠지요. 그리고 서로 북돋우고 배워야 합니다. 기독교가 소외된 사람들을 향해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것은 불교가 본받을 일입니다. 불교는 그런 게 취약하고 참 부럽습니다. 하지만 거리에서 ‘예수천국 불신지옥’을 외치는 방식의 전도는 더 이상 한국 사회에서 먹히지 않을 겁니다. 한계에 온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한국 교회가 이제 내면의 영적인 깊이로 가지 못하면 성장을 멈출 수 있다는 자기 고민을 해봐야 하지 않을까요.

-이명박 대통령이 종교 편향이라고 하는데, 그가 잘못한 게 뭡니까.
“대통령은 불교식으로 얘기하자면 지혜와 선정을 통해 국민을 이롭게 해야 하는 보살의 세계에 있는 사람입니다. 대통령의 허물은 자신이 하는 말이나 행동이 얼마나 큰 영향력을 갖고 있는지 판단을 못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식구끼린 식은 밥을 먹어도 되지만 손님한테는 따스운 밥을 먹이지 않습니까. 손님이 식구보다 귀해서 그렇겠습니까. 이 대통령이 독실한 기독교 신자면 자기 식구에겐 좀 소홀해도 손님 같은 불교 쪽을 더 배려하면서 소통해야 한다는 겁니다. 그런데 8월 27일 범불교도 대회 다음날 청와대에선 기독교계가 주류를 이루고 있는 뉴라이트를 초청해 만찬을 열었습니다. 안 그래도 불편한 불교인들의 마음을 조금만 생각해줬다면 미리 일정이 잡혀 있었다 해도 늦췄어야 하지 않았을까요. 대통령 후보가 된 뒤에도 현충원에 갔다가 바로 한기총(한국기독교총연합·회장 엄신형 목사)을 찾아갔습니다. 이런 행동을 공무원이 보면 코드를 맞출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그러다 보니 지도에서 절을 빼고 그런 겁니다.”

-오늘 그런 점을 사과한 게 아닌가요.
“진정성이 부족합니다. 대통령이 일부 공직자의 종교 편향에 대한 불교계의 ‘오해’라는 식으로 표현했는데 정말 오해입니까. 사태를 바라보는 심각성이 없어요.”

-스님께선 ‘불자에게 이 대통령은 해방 이후 최악의 대통령’이라고 하셨는데, 지나친 표현 아닌가요. 전두환·이승만 대통령 시절엔 폭력적인 법난 사태가 벌어지지 않았습니까.
“물리적 법난만 법난이 아닙니다. 아까 말씀드렸지만 정부에서 만드는 지도에 사찰을 다 뺐습니다. 그것도 두 번씩이나. 사람으로 치자면 호적에서 지운 겁니다. 불교에선 치욕적인 일이죠. 그런데 그 같은 일들이 집권 6개월 만에 스무 건도 넘게 일어났습니다. 그러니 한국 불교 1700년 역사 속에서 종파와 종단을 초월해 스님 1만 명, 신도 20만 명이 모인 겁니다. 불자는 조직적으로 동원되는 경우가 없기 때문에 20만 명 모인 것은 기독교도 200만 명이 모인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만큼 상황이 심각한 겁니다.”

-진리, 깨우침, 선을 추구하는 불교가 정치적인 자리 문제를 제기하는 건 좀 스케일이 작아 보입니다.
“허허, 그렇게 보십니까. 하지만 현실의 삶을 놔두고 초연한 듯 물러서 있는 것이 불교일까요? 현실이 혼탁하다 해도 그 속에서 그 현실을 뛰어넘기 위해 애쓰는 것이 제대로 된 불교겠죠.”

-음, 스님의 이 대통령에 대한 종교적 비판 뒤에 정치적으로 반(反)한나라, 진보·민주화 운동 성향이 깔려 있는 것 아닐까요.
“아주 없다고 할 순 없겠지요. 하지만 이명박의 절대 지지 지역인 이곳 강남에서 그런 얘기를 할 수 있다는 건 우리 불자들 사이에 공감이 있기 때문이지 성향 때문만은 아닐 겁니다.”

명진 스님의 1000일 기도는 이날로 645일째를 맞았다. 하루 1000배를 했으니 64만5000배를 한 셈이다. 선방이 아닌 사찰의 주지 스님이 이 정도 정진을 한 예는 찾기 어렵다. 그는 선방 출신이다. 스님 뒤쪽 선반엔 해진 두루마리를 입고 해맑은 웃음을 짓는 40년 된 꽃미남 흑백사진이 놓여 있다(아래 사진). 열아홉 살 해인사 백련암에 출가했을 때 스승이었던 성철 스님께서 찍어준 사진이라고 한다. 수행이 더해지면서 순천 송광사에서 시작해 해인사·봉암사·용화사·상원사 등 선방에서 40안거를 났다. 20년을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동안거·하안거를 한 독한 사람이기도 하다.

성철 스님과의 에피소드 한 장면. 명진 스님이 서른 살 때인 1980년. 해인사에서 1000여 명 대중이 모인 가운데 성철 스님이 법회를 주재하고 있었다. 명진 스님은 ‘도그마를 깨겠다’는 취지로 벌떡 일어나 물었다. “성철의 목을 한 칼에 쳐서 마당에 던지면 죄가 몇 근 됩니까?” 도끼눈을 뜬 성철 스님 왈, “백골(白骨)이 연산(連山)이라.” 성철 스님의 답인즉 ‘죽음이 이어질 정도로 큰 죄’라는 뜻이었으나 심한 경상도 말씨에 하도 말이 빨라 명진 스님은 못 알아 듣고 머뭇거리다 “예? 뭐라고요” 되물으면서 법거량에서 졌다는 얘기다.

-스님은 재물 욕심은 없는 것 같은데 다른 욕심은 어떻습니까.
“신도들에게 존경받고 싶다, 뭐 그런 명예욕 같은 게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것도 사실 없어져야 하는데… . 아직 수행이 좀 덜 돼 조금 있습니다. 남들이 잘한다고 하면 기분이 좋아 밤새 잠이 안 올 정도니. 하하하.”

인터뷰를 마치고 ‘종교 간 대화’ 기획에 코멘트 한마디 해 달라고 부탁하자 그는 다음과 같은 시를 읊어주었다. 이명박 대통령에게 주는 메시지라고 한다.

예수와 석가, 십자가 지고 골고다 언덕 오르고/달마와 베드로, 소림굴에서 선정(禪定)에 드네/불교네 기독교네 너네 나네 진달래 철쭉일세/산은 높아 구름에 닿고 물은 흘러 바다에 들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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