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호세상보기>베블런과 해리스의 대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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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미국의 경제학자 소스타인 베블런(1857~1929)은 1899년 『유한계급론』을 썼다.괴짜로 알려진 그는 이 책에서 사람은 과시적(誇示的)소비를 즐긴다고 말했다.그는 사람들이 과시적소비(conspicuous consumption )를 부(富)와 권력의 상징으로 여긴다고 말했다.인간의 속물근성을 신랄하게공격한 이 책은 큰 논란을 불러일으키면서 미국경제학계의 이색적업적으로 남게 됐다.
꼭 90년뒤인 1989년 미국의 인류학자 마빈 해리스는 『우리의 인류(Our Kind)』라는 책을 썼다.『작은 인간』으로번역.소개된 이 책에서 해리스는 인류 삶의 변천과 그 의미를 짚어보면서 베블런의 저작을 많이 인용했다.기본적 으로 베블런과의견을 같이한 그는 현대의 과시적 소비는 한 개인이 사회생활에서 성공하기 위해 치르는 비용이 돼버렸다고 개탄한다.
지금 한국인의 과소비(過消費)가 다시 문제되고 있다.과시적 소비를 하다보니 과소비를 하게되는 것은 필연지사.수백만원짜리 속옷,수천만원짜리 모피와 자동차,억대 가구,고급 골프채,고급 화장품,비싼 청바지 등이 불티나게 팔린다고 신문마 다 대서특필하고 있다.만약 이 두 석학이 만나 오늘의 한국을 얘기하면 무슨 말을 나눌까.
『한국인들이 지금 야단났다.국내에서는 호화사치 풍조가 일어나고,해외여행에서는 돈을 펑펑 써댄다.
그런가하면 반도체같은 주력상품의 수출이 부진해 올 한햇동안의경상적자가 사상최대인 1백10억~1백20억달러에 이른다고 야단이다.그래서 경제 위기론까지 감돈다고 하는데 베블런 선생,귀하는 인간의 과시적 소비가 어디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경제발전의 초기 단계에서는 고급 재화의 소비가 노동을 안해도 되는 이른바 유한계급(有閑階級)사이에서만 일어났다.그러나 경제발전에 따라 이것이 사회 전체의 규범으로 번졌다.보다 훌륭한 재화를 소비한다는 것은 부의 증거가 되기 때문 에 명예로운 것이 되고,반대로 질적으로나 양적으로 정당한 소비를 할수없는 것은 열등과 무력(無力)의 표시가 됐다.』 『연원(淵源)은 그렇고 그 소비의 대상은 어떻게 발전하여 왔나.』 『간단한예로 술을 들어보자.술은 여자가 빚고 먹기는 남자가 먹었다.여자는 술을 마시는 것이 금지됐고,반대로 남자가 술을 마시고 주정을 하는 것은 우월한 자의 명예가 됐다.이런 관습이 점차 발전해 음식.주거.장식품.의복.오락품등으 로 번졌다.』 『그래서결국 돈이 많이 드는 악덕의 증상이 우위자의 표지로 널리 인정되고 또 미덕이 되고 나아가 사회적 존경까지 받게 됐다는 선생의 독설은 아주 유명하다.그러나 지금은 여자도 과시적 소비를 많이 하는데….』 『거기에는 또 이유가 있다.하층중산계급은 과시적 소비를 하기에는 역부족하다.그래서 자신의 부인들을 동원,대행적(代行的)유한을 추구한다.말하자면 여자들은 가정과 주인의좋은 평판을 위해 과시적 소비를 하게된 것이다.』 『과시적 소비는 생필품의 소비 이상으로 쓸데 없는데다 돈을 쓰는 것이고 그 동기는 명성을 얻기 위한 것이라는 당신의 정의(定義)는 아직 유효한가.』 『유효하다.부유층의 사치.선물.만찬.연회등은 파푸아족 추장의 베품 또는 뻐김과 근본적으로 같다.』 (수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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