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름 값 떨어지니 ‘러·브’가 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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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1면

‘기름 값이 펀드를 잡았다’. 국제유가가 배럴당 100달러 선 아래로 밀리면서 러시아·브라질 증시가 급락, 관련 펀드의 수익률이 추락하고 있다. 두바이유와 브렌트유는 배럴당 100달러 밑으로 내려왔고, 9일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거래된 서부텍사스산 원유(WTI)도 103.26달러를 기록, 두 자릿수 진입을 눈앞에 뒀다. 유가를 비롯한 상품가격 상승세에 강세를 나타냈던 원자재 부국 증시는 연일 약세다. 브라질 보베스파지수는 최근 3개월 새 30% 가까이 하락했다. 그루지야와 전쟁을 벌인 러시아 RTS지수는 최근 한 달 동안에만 20% 떨어졌다. 최근 3개월간 40% 넘게 하락했다.  


◆유가 하락에 타격 받은 러·브 증시=러시아 증시는 9일에도 7.5% 폭락했다. 2006년 6월 이후 최저치다. 마켓워치에 따르면 이날 하루 만에 시가총액 96억 달러가 증발했다. 브라질 증시도 4.5% 급락, 지난해 8월 이후 가장 낮은 수준으로 주저앉았다. 이날 급락은 국제유가의 배럴당 100달러선 붕괴에 따른 것으로 풀이됐다. 러시아 증시 시총의 70% 정도를 차지하는 원자재 관련 기업의 주가 하락이 증시 전체를 끌어내렸다. 여기에 그루지야와의 분쟁도 겹쳤다. 러시아가 그루지야를 침공하자 이에 불안을 느낀 외국인 투자자들이 러시아 시장을 떠나면서 러시아 시장 내 유동성이 메말라 가고 있는 것도 증시 하락을 부채질했다. 외국인 자본 이탈에 4일 러시아 루블화 가치는 유로·달러 바스켓 방식을 채택한 2007년 2월 이후 최저치까지 밀렸다. 파이낸셜 타임스(FT)는 “외국 자본의 이탈로 러시아 은행들이 대출을 줄이기 시작하면 그 충격이 실물경제로 확산될 수 있다”고 현지 은행가들의 말을 빌려 보도했다. 브라질도 원자재 가격 하락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세계 경기의 둔화로 원자재 수요가 줄면 상품시장이 약세가 돼 브라질 경제에 타격을 준다. 그나마 금융·통신 등 내수 기업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커 러시아에 비해서는 사정이 나은 편이다. 그래도 내수만으로 성장세를 이어가기엔 한계가 있다.

◆’뒷북’ 투자 위험=제로인에 따르면 최근 3개월 동안 설정액 10억원 이상 러시아 펀드 20개는 평균 원금의 35%를 까먹었다. 같은 기간 브라질 펀드 20개의 수익률도 -28%다. 러·브 펀드의 수익률도 -30% 안팎으로 별반 다르지 않다. 향후 전망도 긍정적이지 못하다. 당장 세계 경제는 침체가 우려되는 상황이다. 원자재 수요가 감소, 가격이 하락할 수밖에 없다. 현대증권은 10일 발표한 자산 배분 전략에서 러시아와 브라질에 대해 각각 비중 축소와 중립의 입장을 취할 것을 투자자들에게 권고했다. 다만 장기적으로 보면 투자할 만하다는 평가도 있다. 하나대투증권 임세찬 연구원은 “10년 전과 비교했을 때 신흥시장이 충분히 커졌기 때문에 원자재 가격 조정 폭은 제한될 것”이라며 “현재 러시아와 브라질 증시의 주가수익비율(PER)은 신흥국 평균보다 낮다”고 강조했다.

러·브 펀드의 고전은 수익률에 일희일비해 펀드를 지나치게 갈아타거나 ‘뒷북’ 투자가 얼마나 위험한지 다시 보여 줬다. 상반기 중국과 인도 펀드의 고전을 참지 못하고 환매해 러·브 펀드로 갈아탄 투자자들은 두 번 가슴을 쳐야 했다. 수익률을 좇아 갈아타기보다는 자산 배분의 원칙에 따라 투자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의 조언이다.

고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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