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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잊혀진 미얀마 민주화 항쟁 기록 "비욘드 랭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1면

87년 민주항쟁의 기억이 아직도 선연한 한국인들에게 비슷한 경험으로 다가오는 88년 미얀마 민주화항쟁을 기록한 영화 『비욘드 랭군』이 6일 호암아트홀에서 개봉된다.
최근 아웅산 수지 여사에 대한 구속영장 발부로 세계언론의 초점이 되고 있는 미얀마는 88년 네윈 군사정권의 20여년 철권통치에 대항해 국민들이 총궐기했다가 발포를 서슴지 않는 무자비한 진압에 수천명이 숨진 아픈 기억의 나라.
영화는 당시 집권군부의 철저한 통제와 세계언론의 외면으로 묻혀버린 처절한 항쟁과 학살의 기록을 8년만에 발굴해 보여준다.
불과 1년을 사이에 두고 독재정권에 대항해 투쟁한 한국과 미얀마 국민은 비록 투쟁과정과 결과는 상이하지만 영화 를 통해 특별한 공감대를 누릴 만하다.
미국인 여의사 로라(패트리샤 아퀘트)는 강도에게 가족을 잃은아픔을 동양적인 신비속에 달래볼 요량으로 88년 미얀마(당시는버마)관광길에 나선다.때마침 미얀마는 민주화시위가 한창인 상황. 시위군중을 잔인하게 총살하는가 하면 미얀마인들의 다정함을 느끼게 해준 노신사를 범죄자로 탄압하는 이 나라 군인들의 만행을 본 로라가 민주화운동의 정신적 리더인 노신사와 함께 태국으로의 탈출길에 나선다는 내용.
이 영화를 보고난 관객들은 다소 불만을 품을 수도 있다.
미국인 여성의 개인적인 아픔과 미얀마사회의 고통이 동격처럼 설정된 것이 그렇고 액션영화처럼 관객을 몰입시키는 추적신은 주제보다 흥행을 노려 제작됐다는 인상을 심어준다.
그러나 『자기 일에만 충실하면 잘 살수 있다』고 믿어온 일반적인 미국시민이 아웅산 수지 여사의 용기있는 투쟁과 군인들의 총에 쓰러지는 미얀마 민중의 비참한 모습을 우연히 목격하면서 선진국식 개인주의를 벗고 휴머니즘에 눈을 뜨는 과 정은 현실적인 설득력이 있다.
이 장면은 동남아에 대해 어느새 미국인처럼 우월적인 지위를 누리고 그곳 사람들을 경시하는 사고에 빠져버린 한국인에게도 마찬가지로 힘을 갖는다.
영화는 할리우드영화답게 철저히 주인공 위주로 전개된다.그러나영화를 제대로 보고 싶으면 주인공보다 배경인 미얀마 사람들에게초점을 맞춰야 한다.
특히 노신사 아웅 코 교수역은 민주화진영에서 활약하다 프랑스로 망명한 실존 인물이 배역을 직접 맡았다.배우가 아닌 그가 실제 투쟁경험을 바탕으로 꾸밈없이 펼치는 실연(實演)을 눈여겨봄직하다.
강찬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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