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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띔! 문화 내비게이션] 철학, 미술을 만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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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전시 ◆이기봉 개인전: 젖은 정신(The Wet Psyche)=파란 수조 속에서 유유히 헤엄치는 책 한 권. 비트겐슈타인의 『논리철학논고』다. 흐느적거리는 ‘지성의 상징’을 보며 서구 미술계는 “철학을 시각화했다”“20세기의 인간 이성을 21세기적으로 해석했다”고 칭송했다. 지난해 독일 카를스루헤의 ZKM미술관에 설치됐던 이기봉(51) 고려대 교수의 작품 얘기다.

이번에는 두 권의 책이 수조 속에서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한다. 국제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그의 개인전에 나온 신작 ‘끝의 끝(End of the End·사진)’이다. 작가는 “독신이 아닌 사랑에 관해 얘기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독일 전시와 서울 전시에 이어 그는 올 가을 싱가포르 비엔날레와 11월 헬싱키 KIASMA 현대미술관에 작품을 내놓는 등 왕성한 활동을 벌인다.

전시 제목이기도 한 ‘젖은 정신(The Wet Psyche)’은 전시장 벽에 걸린 대형 회화 연작이다. 수묵화 같기도 흑백사진 같기도 한 이 작품은 안개 속에서 희미하게 떠오르는 나무 그림이다. 인간과 사물과 자연의 경계를 여러가지 재료와 기계 장치로 형상화해 온 그의 작품은 마무리가 깔끔하다. 그러나 보고 나면 의식 저편을 건드리는 듯 묘한 여운을 남긴다. 생각이 깊어지는 이 계절, 정신에 윤기를 줄만한 전시다.

미술 담당 권근영 기자

▶9월 29일까지/ 서울 소격동 국제갤러리

무료/ 02-735-8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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