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 빠른 부호들 이미 새 투자처 찾아 나서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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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호 28면

흥분→환상→버블로 이어진 한 시대가 저물고 있다. 자산가격 폭락으로 신음이 들려온다. 재테크 세계에서 신음이나 아우성은 새로운 희망이 솟는 효과음이라고 한다. 버블이 붕괴하는 순간 반성과 함께 새로운 길을 찾기 위한 실험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해외시장에선 지금

대표적인 예가 이른바 ‘지속성 펀드(Sustainable Fund)’다. 이름 자체에서 단기 수익을 좇았던 버블시대에 대한 반성이 엿보인다. 순이익이 오랜 기간 지속할 수 있는 기업에 투자하는 것이다. 이 펀드는 돈을 벌어 사회에 환원하는 차원이 아니라 기업의 비즈니스 모델을 세우는 단계부터 시장과 사회에 기여하는 기업에 중점적으로 투자한다. 지속 가능한 에너지를 개발하거나 윤리적 경영 등을 실천하는 기업이 투자 대상 1순위다.

세계 부유층이 올 들어 지속성 펀드에 부쩍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고 파이낸셜 타임스(FT)와 유로머니가 최근 보도했다. 그 결과 지속성 펀드에 투자한 자금이 지난해 5000억 달러(약 550조원)에서 올 7월 말 현재 7000억 달러로 늘어났다. 이런 추세라면 2012년에는 지속성 펀드 자산 규모가 1조4730억 달러에 이를 전망이다.

유로머니는 유럽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의 말을 빌려 “지속성 펀드에 돈을 맡긴 투자자에게 매력적인 경영자는 어떻게 하든 순이익을 늘리려는 ‘어제의 사람’이 아니다”고 보도했다.

미국 사회책임경영연구소(CSRI)에 따르면 대체에너지와 사회책임 기업에 투자한 펀드들의 최근 20년 평균 수익률이 연 12.5%로, 일반 주식형 펀드(평균 9.8%)보다 높았다. 안전하면서도 꾸준한 수익을 추구하는 선도적인 부호들에게는 충분히 매력적으로 비칠 수 있다.

지속성 펀드는 사모와 벤처 펀드 형태를 띤다. 소수 부호의 자금을 모아 지속적인 순이익을 낼 비즈니스 아이디어를 가진 사람을 지원해 10년 이상 흐른 뒤 과실을 나눠 갖는 방식이다.

기존 투자 관행에서 완전히 벗어난 지속성 펀드와 달리 앞서 나가는 글로벌 부호들은 인터넷→주택→친디아 붐을 이를 차세대 호황이 어디서 발생할지를 찾고 있다. 경제전문 블룸버그통신의 칼럼니스트 매튜 린은 그 후보로 그동안 무시당했던 FIG(프랑스·이탈리아·독일) 시장을 들었다. 이들 나라가 최근 버블로 탄생한 친디아 부자들이 반색할만한 명품을 많이 생산하고 있다는 이유였다.

국내에서도 에셋플러스 자산운용의 강방천 회장이 고급품을 만드는 기업 주식에 투자하는 펀드를 7월초 내놓아 관심을 끌고 있다. 지구촌 증시가 몸살을 앓을 때 남다른 발상으로 새 투자처를 발굴한 것이다. 그 밖에 월스트리트 전문가 가운데는 신용경색으로 거대 금융회사 대신 특정 부문에 뛰어난 경쟁력을 갖춘 ‘초소형 금융회사’가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예상도 한다. 일부 전문가는 1990년대 후반 이후 신기술과 첨단 바람 때문에 무시됐던 제지나 철도·식료품 산업이 최근 위기를 딛고 생존하면 ‘미운 오리’에서 ‘백조’로 변신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세계적 컨설팅업체인 AT커니의 프리츠 크뢰거는 “인터넷 같은 신개념의 기술이 아직 등장하지 않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는 최근 10년 사이에 무시당했던 영역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물론 아직 ‘바로 이것이다!’ 하는 대안은 드러나지 않고 있다. 또 현재 거론되고 있는 차세대 대안 모두가 메가 트렌드로 발전해 한 시대를 풍미할 것이라고 말하기도 힘들다. 하지만 무수한 투자자가 버블 붕괴의 상흔을 회복하는 데 급급한 이때 미래로 눈을 돌리며 새로운 것을 찾는 이들이 등장하고 있다는 점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한 사이클을 먼저 준비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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