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노총 위원장 직선제 난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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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노총이 살아남으려면 직선제를 하루빨리 도입해야 한다."

"현재 여건상 선거인 명부 작성부터 힘들다.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

4.15총선에서 지지하던 녹색사민당이 참패한 이후 조직쇄신 차원에서 위원장 직선제를 추진 중인 한국노총이 시작부터 어려움을 겪고 있다. 28일 열린 회원조합 대표자회의에서 "뜻은 좋지만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반대론에 부닥친 것이다.

한국노총은 당초 '직선제 카드'를 생존을 위한 승부수로 꺼내들었다. 이남순 위원장 사퇴 후 구성된 비상대책위원회는 "조합원의 참여와 개혁을 이끌어내는 최선의 방법은 직선제 개혁뿐"이라고 밝히고 있다. 비대위는 이미 직선제를 실시하는 금융노조와 부천지역본부 사례를 살펴보고 투표구 선정, 선거관리, 선거감시 등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을 검토 중이다. 여기에 공공서비스노련 등 단위노조와 16개 시.도지역본부 대표자들이 직선제를 강력히 지지하는 등 내부에서도 대세로 굳어지는 분위기다.

하지만 직선제를 즉각 실시하기엔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크다. 우선 70만명(의무금 납부자 기준)에 이르는 조합원들에 대한 선거인 명부를 만드는 것부터 간단한 작업이 아니다. 투표자격이 있는 개별 조합원에 대한 명단조차 아직 확보되지 않은 상태다.

또 단위조합마다 투표소를 설치해 투.개표 과정을 관리하고 부정선거를 감시해야 하는데 지금의 조직역량으론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투표율이 낮으면 선거 자체가 무효되는 '비상사태'가 발생할 위험도 있다. 위원장이 되려면 재적조합원 과반수 투표, 투표자 과반수 지지를 얻어야 한다. 하지만 현장 여건상 50% 이상의 투표율을 이끌어내기가 만만치 않다는 얘기다.

위원장 보궐선거 시한인 6월 18일 이전에 직선제를 도입할 경우 조합원의 참여를 독려할 만한 물리적 시간이 부족하다. 이 때문에 이번 보궐선거는 기존의 대의원 선출방식으로 치르고 새 집행부가 직선제로 규약을 개정해 내년 2월 선거부터 도입하자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시간을 두고 준비하자는 쪽의 목소리다.

한국노총 관계자는 "직선제 도입론이 대세지만 충분한 시간을 두고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철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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