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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地圖>문학 19.베스트셀러 작품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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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중공군 50만명에 해당하는 적이다.』 『소설도 모르면서 그런식으로 밀어붙이지 말라.』 54년 서울신문에 연재중이던 소설『자유부인』을 두고 당시 서울대 교수 황산덕(黃山德)씨와 작가정비석(鄭飛石)씨 사이에 논쟁이 붙었다.
6.25 피난시절 대구와 부산에서는 춤바람이 거세게 불었다.
가정파탄에 이른 경우도 왕왕 있었다.그 세태를 꼬집고 바로잡기위해 鄭씨는 대학교수 부부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불륜행각과 타락상을 재미있게 그려나가다 대학교수로부터 1.4■ 퇴까지 당해야했던 중공군보다 더 무서운 적이란 공격을 당한 것이다.논쟁은 삽시간에 일반에게로 비화됐다.『이적 행위』『북한에서 남조선 부패상을 알리는 교양물로 이용된다』『여성모독』등의 비난과 『용기를 갖고 계속 집필하라』는 격려가 동시에 쏟아졌다.
연재가 끝난후 단행본으로 묶인 『자유부인』은 단박 7만부가 팔려나갔고 영화화돼 13만명의 관객을 불러들여 한국 최초로 「베스트셀러」라는 말을 수입하게 했다.애정세태풍자의 재미도 재미려니와 작품을 둘러싼 논쟁이 일반의 관심을 집중시 켜 판매에 일조한 것이다.이후 베스트셀러를 만들려면 논쟁과 논란을 불러일으키라는 말은 오늘까지도 여전히 금과옥조로 받아들여진다.
「베스트셀러」라는 말은 1897년 미국의 문예지 『북맨』이 잘 팔리는 책들을 소개한 「베스트셀링 북스」난에서 유래됐다.
4.19로 열린 60년대 들어서는 60년 4.19의 민주화 공간에서 월남작가로서 실제 겪은 남북 양체제를 객관적으로 다룬최인훈(崔仁勳)씨의 『광장』이 많이 읽혔다.24세의 군인이던 崔씨가 『새벽』11월호에 『빛나는 4월이 가져온 새 공화국에 사는 보람을 느낀다』며 이 작품을 발표하자마자 평단과 독서계가들끓기 시작했다.『전후 침체된 50년대 문학계에 하나의 돌을 던진 작품』이라는 극찬과 함께 이 작품은 현재까지도 연 1만권이상씩 나가 문학출판사상 초유로 최근 1백쇄를 돌파한 현대의 고전으로 자리잡았다.
62년 출간된 박경리(朴景利)씨의 『김약국의 딸들』도 많이 읽혔다.약국의 딸들을 통해 불륜의 비극적 윤회를 가슴 절절하게다룬 이 작품은 30여년이 흐른 93년 다시 출간돼 또다시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진기록을 세웠다.당시 이 작품 에 감명받은 독자들이 2세들에게 대물림해 읽히고 있다는 것이 출판사측 설명이다. 한편 마음속에 그대로 그려질 듯한 절제된 감각적 문체로실존적 고뇌를 파고든 당시의 신예작가 김승옥(金承鈺)씨의 『서울 1964년 겨울』과 남녀간의 끝간데 없이 지순하고 슬픈 사랑을 그린 박계주(朴啓周)씨의 『순애보』도 60년대 독자들의 심금을 울렸다.
70년대 들어서는 군사정권의 개발독재의 희생양인 술집 여자의순정을 그린 최인호(崔仁浩)씨의 『별들의 고향』이 최고의 베스트셀러를 기록했다.『우리시대의 영원한 연인을 그리되 전세대와는다른 감성으로 철저하게 재미있게 써보겠다』며 73년 연재를 마치고 출간된 이 책은 1백만권에 육박하게 나갔으며 이듬해 이장호감독에 의해 영화화돼 영화사상 관객 50만명동원 기록을 세웠다. 『별들의 고향』에 뒤이어 조선작(趙善作)씨의 『영자의 전성시대』도 수많은 독자와 관객을 동원,70년대 전반 「호스티스문학」이란 말을 낳게 했다.농촌전통사회가 개발정책에 따라 붕괴되며 얼마나 많은 처녀들이 대도시 공장 노동자로 올 라와 밤의꽃으로 전락했던가.그런 여자들에게 섹스와 순진성을 덧씌운 호스티스소설들에 70년대 전반 독자들은 빠져들고 있었다.
중반 들어서는 황석영(黃晳暎)씨의 『객지』,윤흥길(尹興吉)씨의 『아홉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조세희(趙世熙)씨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등 근로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룬 작품들도많이 읽히며 80년대 민중문학의 도도한 흐름을 닦았다.그러나 79년에는 신과 종교라는 형이상학적 주제를 깊이 있게 파고든 이문열(李文烈)씨의 『사람의 아들』,김성동씨(金聖東)씨의 『만다라』가 베스트셀러에 오르며 독서계의 수준을 한단계 끌어올렸다. 힘에 의한 정권찬탈로 열린 80년대 초반에는 현대판 의협소설이 많이 읽혔다.「장총찬」이란 사내가 창녀촌.소매치기단.사이비 종교단체등 사회의 어두운 구석에 종횡무진 뛰어들어 악당들을소탕하는 김홍신(金洪信)씨의 『인간시장』은 나오자 마자 1백만권이 팔려 밀리언셀러 시대를 연 작품.같은 80년에 나온 이동철(李東哲.본명 李喆鎔)원작의 『어둠의 자식들』도 비슷한 주제로 80년대초 전망없는 답답한 시대에 독자들의 속을 후련하게 터주었다.이 두 베스트셀러 작가는 이후 국회의원으로 의정단상에오르기까지 했다.
한편 신군부의 독재에 저항하는 민중시가 목소리를 높여가며 「80년대 시의 시대」를 열었으나 이후 잔잔한 감성의 시들이 독자를 사로잡아가기 시작했다.죽은 아내에 대한 못잊을 사랑을 애절하게 노래한 도종환(都鍾煥)씨의 『접시꽃 당신』 과 사랑.고독.그리움을 향한 방황등 보편적 소재를 서정적으로 녹인 서정윤씨의 『홀로서기』가 밀리언셀러를 기록하며 80년대말 독자들을 끌어들였다.
90년대 들어서는 역사적 인물을 다룬 소설들이 밀리언셀러로 속속 등장했다.극작가 이은성씨의 『소설 동의보감』이 지금까지 3백만권이 나가며 그 흐름을 열었으며 이후 『소설 토정비결』『소설 목민심서』등 무명작가들의 역사인물소설들이 속 속 1백~2백만부대로 진입했다.80년대 민족문학진영이 고취시킨 「문학의 주체성」이 아이러니컬하게도 민족의 주체적 인물을 대중화한 무명작가들의 작품에서 결실을 맺었던 것이다.같은 역사소설적 맥락에서 이인화씨의 『영원한 제국』,시공을 초월한 우리의 설화에 기댄 양귀자(梁貴子)씨의 『천년의 사랑』등이 현재 베스트셀러 행진을 하고 있다.
이경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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