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정부가 나서서 우리 일처럼 맡아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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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용천 열차 폭발사고가 발생한 지 나흘이 지났으나 부상자 치료와 피해주민들에 대한 지원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한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효과적인 지원을 논의하기 위해 어제 판문점에서 남북 적십자사 간 접촉이 있었으나 특별한 합의에는 이르지 못했다. 우리 측은 한시라도 빨리 실질적인 도움을 주기 위해 육로 지원.병원선 파견 등을 제의했다. 그러나 북측은 이를 거절하고 29일로 잡혀 있는 남포행 선박편으로 구호물자를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우리는 북한이 왜 이런 반응을 보였는지 짐작이 간다. 그러나 여기에 이런저런 토를 달고 싶지는 않다. 불행은 누구에게나 올 수 있는 일이다. 어려울 때 도움을 받을 수도 있고 또 도움을 줄 수도 있다. 형제로서 순수하게 돕고 싶어 하는 남쪽의 진심을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뜻밖의 사고로 고통받는 형제를 살리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시간이 갈수록 드러나고 있는 용천 사고의 참상은 상상을 초월한다. 사망자 수는 계속 늘어나고 이재민은 8000여명에 이르고 있다. 특히 화상으로 얼굴이 일그러진 어린 학생들이 병원에 누워 아무런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는 장면은 우리의 심정을 더욱 착잡하게 하고 있다. 생명이 위독한 중상자 300여명에 대한 치료도 촌각을 다투고 있으나 이 역시 거의 방치되고 있다고 한다. 북한에 의약품.생필품을 지원하자는 민간 차원의 운동은 어느 때보다 뜨겁다.

그러나 정부의 지원대책을 들여다보면 아쉬움이 있다. 정부는 대한적십자사를 대북 지원창구로 삼고 있다. 우리는 용천 참사의 피해 규모를 볼 때 이번 일은 적십자사 차원이 아니라 정부가 직접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판단한다. 민간 차원에서의 지원은 느리고 미약할 수밖에 없다. 사건발생 후 4일이 지났는데도 우리의 지원물품은 배에 싣지도 못한 상태다. 향후 피해지역 복구문제도 간단치 않은 일이다. 현지의 피해복구도 삽이나 소달구지가 주요 수단이라니 답답하다.

이제라도 정부는 과감한 대책을 구상할 필요가 있다. 남한에서 똑같은 사고가 발생했을 경우 대처하는 수준에서의 지원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한 예로 "불도저 100대를 보내겠다"고 왜 제의를 못하는가. 아울러 피해주민을 위한 구호텐트.생필품.의약품.야전병원 등을 한 세트로 묶어 북측에 전달하는 것이다.

우리 정부가 그러한 자세를 보이는 것은 동포로서의 의무다. 북한의 수용 여부는 그 다음 문제다. 필요한 것을 필요한 때에 도와주는 자세, 이런 진심을 북한에 보여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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