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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미국 대선] “이재민 돕자” 분위기 띄워 로라·신디 표심 엮기 공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1면

1일(현지시간) 오전 미국 미네소타주 세인트 폴의 크라우니 플라자 호텔. 이날 오후 개막된 공화당 전당대회에 참석하기에 앞서 조찬 모임을 열던 루이지애나주 대의원들은 방송을 듣고 깜짝 놀랐다. 조지 W 부시 대통령 부인 로라가 예고 없이 조찬장을 찾았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자리를 함께한 공화당 대통령 후보 존 매케인 상원의원의 부인 신디 등은 로라가 입장하자 반갑게 맞았다.

먼저 연설을 한 신디는 “우리의 모든 마음이 여러분과 함께하고 있다”고 했다. 허리케인 구스타프가 루이지애나주 등을 덮친 걸 걱정한다는 얘기였다. 신디는 “허리케인 피해가 우려한 것보다는 나쁘지 않은 것 같다”며 “그건 우리의 기도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로라의 연설을 청하면서 “로라를 승계하려는 내가 오늘 이 자리에 함께 있다는 게 경탄스럽다”고 했다.

로라는 인사말에서 “허리케인 피해가 크지 않길 간절히 바라는 여러분의 마음을 잘 안다”며 “대피한 이들이 귀가하고, 아이들이 학교로 돌아갈 수 있도록 기도하자”고 했다. 신디와 대의원들은 큰 박수를 보냈다. 로라는 이날 매케인을 “미국의 진정한 영웅”이라고 불렀다. “상대편(민주당 대통령 후보인 버락 오바마 상원의원)과 비교하면 경험이 매우 매우 많다”고 말했다.

로라는 올해 베트남·르완다·그루지야 등을 방문한 신디의 봉사활동을 열거하면서 “그녀가 대통령 부인이 되면 무엇을 할 것인지 우리는 알 수 있다”며 ‘준비된 퍼스트 레이디’임을 강조했다.

부통령 후보로 지명된 세라 페일린 알래스카 주지사에 대해선 “주지사 모임 때 같은 테이블에서 식사한 적이 있다”고 밝혔다. “그때 그녀는 (다운증후군이 있는) 다섯째 아이를 임신하고 있었다. 행사장의 모든 여성은 다섯 아이의 엄마와 주지사 역할을 동시에 하는 페일린을 수퍼우먼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로라와 신디는 이날 짝지어 다녔다. 구스타프의 피해 지역인 미시시피주 대의원들을 함께 만났고, 대의원들이 걸프만 지역에 보낼 위문품을 꾸리는 미니애폴리스 컨벤션 센터도 같이 방문했다. 둘은 전당대회장에서도 나란히 등장해 같은 얘기를 했다. 로라는 “지금 우리가 기억할 점은 ‘우리는 미국인이고, 미국의 이상(ideals)은 정당과 당파성을 초월한다’는 점”이라며 초당적 위기 극복을 강조했다.

신디는 “존(매케인)이 말했듯 우리는 지금 공화당의 모자를 벗고 미국인의 모자를 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둘이 나란히 연단에 서서 “미국인은 위기를 맞은 시민을 돕는 걸로 유명하다”(로라), “여러분 뒤의 스크린에 나타나는 지역을 돕자”(신디)고 외칠 때 공화당원들은 기립박수를 쳤다.

지난주 축제 분위기 속에서 전당대회를 연 민주당과 달리 흥겨움을 배제한 가운데 첫날 행사를 간단히 치른 공화당에서 언론과 국민의 관심을 그나마 끈 주역은 로라와 신디다. 두 여성이 전당대회 첫날 부지런히 뛰어 다니며 이재민 돕기를 호소하자 공화당원은 대거 동참했고, 언론도 초점을 맞췄다. AP통신은 “사우스캐롤라이나와 뉴햄프셔주 대의원들의 숙소인 미니애폴리스 힐튼 호텔에 구호기금 모금 전화은행이 설치되자 1시간 만에 100만 달러가 모였다”고 보도했다. 마이크 던컨 전국위 의장이 대회 개막 선언을 하면서 “각자 휴대전화로 5달러씩 적십자에 기부하자”고 권하자 대의원과 당원들은 일제히 전화를 들었다.

첫날 행사를 차분하게 치른 공화당 지도부는 “집권당의 위기관리 능력을 보여줬다”고 자평했다. 하지만 페일린의 17세 딸이 임신했다는 방송 뉴스가 쉴 새 없이 반복되자 일부 대의원들은 불안해했다. 로라가 당에 고액을 기부한 후원자들에게 감사하다는 인사를 한 비공식 행사장에서도 그런 목소리가 나왔다.

그 자리에 참석한 전략가 칼 로브 전 백악관 부실장에게 “어떻게 보느냐”고 물었더니 “어느 가정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므로 문제가 안 될 것”이라고 했다. 그는 “민주당 쪽에서 그 문제를 제기한 건 페일린이 위력적 카드이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공화당은 구스타프의 세력이 약해졌다고 보고 2일부터는 전당대회를 정상화할 방침이다. 공화당 관계자는 “매케인은 4일 예정대로 전당대회 장소인 세인트폴·미니애폴리스에서 후보 수락 연설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세인트폴·미니애폴리스=이상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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