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교생이 동네 걷기 행진으로 WALKHOLIC 되다

중앙일보

입력

양평 지평면에 소재한 곡수초등학교. 이 학교의 철학은 몸이 건강해야 공부도 더 잘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지만 요즘 같은 경쟁시대에 이를 행동으로 실천하기란 말처럼 그리 쉬운 것이 아니다. 곡수초등학교는 속도와 경쟁의 시대를 ‘걷기’라는 가장 근본적이면서도 느린 방법으로 정면돌파 하고 있다.

‘걷기 행사’에 남다른 애정을 쏟고 있는 신상수 교장은 중앙일보의 워크홀릭보다 곡수초등학교의 워크홀릭 운동이 훨씬 일찍 시작됐다며 자부심과 반가움을 한껏 드러냈다. 곡수초등학교의 선생님들은 ‘아이들과 함께 걷기’를 가장 중요한 학습 목표로 삼고 있다. 자연히 아이들 역시 교실에서 공부하는 시간과 운동장에서 뛰어노는 시간을 똑 같이 중요하게 여긴다. 어디 그뿐인가. 수시로 울타리 밖으로 뛰어나가 꽃길을 걷고 개울가에서 물장구를 치며 노는 것은 이곳 아이들만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혜택이다.

신 교장은 여름방학을 맞아 1박2일에 걷기 행사도 벌였다. 70여 명의 전교생과 전 직원이 양평군 지평면 순례 행진을 시행했다. 약 25km에 이르는 구간을 함께 걸으며 친구와 장난도 치고 선생님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이름 모를 나비 떼에 함성을 질렀던 즐거운 시간이었다. 아이스크림을 입에 물고 시를 쓰는 저학년들과 생태학습에 부쩍 관심을 보이는 고학년이 고루 섞여 조화를 이루었다. 야영을 할 때는 고학년이 저학년을 챙기며 텐트를 치고 밥을 짓는 등 지켜보는 선생님을 미소 짓게 하는 일들이 줄줄이 이어졌다. 한 명의 낙오자도 없이 완주한 아이들은 지역주민들로부터 찬사를 받으며 다시 마을로 돌아왔다. 요즘엔 곡수초등학교의 열성적인 워크홀릭 운동이 소문을 타면서 전학 오는 아이들도 부쩍 늘어났다. 몇 해 전만 해도 겨우 3학급에 불과했었는데 지금은 3학급이 더 늘어났다.
지난 4월 도시에서 전학 온 조남기(곡수초, 4년) 어린이는 이 생소한 체험을 두고 이렇게 말한다.
“저는 이번 4월에 도시에서 전학 왔어요. 처음에는 걷기 행사가 싫었어요. 도시에서 살 때는 걸어 다니는 일이 많지 않았는데 어떻게 걸어갈까 겁이 났어요. 제가 사는 동네는 지평면 곡수리인데요, 통학버스를 타려면 많이 걸어야 해요. 그런데 이제는 그 길을 걸을 때 기분이 좋아요. 푸른색 논길을 지나 개울도 건너고 친구들과 이야기도하고요. 이번에 걷기행진 할 때는 교감선생님께서 어깨도 주물러 주고 손도 잡아주셨어요. 그래서 돌아올 때는 제가 맨 앞에서 걸어오며 뒤에 있는 동생들에게 힘내라고 손을 흔들어줬어요.”

‘걷기생활’이 학교의 가장 큰 재산이자 자랑이라고 거듭 강조하는 신 교장은 포부가 크다. 학생들의 체력을 걷기로 잘 다진 후에 고학년 아이들에게 이 땅의 넓은 길들을 직접 체험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할 생각이다. 그리고 길 위에서 아이들이 창작한 그림과 시를 열심히 모아 녀석들에게 멋진 도보 작품집을 선물할 계획이다. 다음은 곡수초등학교 꼬마들의 귀여운 시 두 편이다.

선생님과 걷는 길 / 정예나(2학년)

작년에 우리면 순례 때는 비가 많이 와서 우산 쓰고 걸었다
이번에는 비가 오지 않았지만 너무 더워서 많이 힘들었다
하지만 걷다가 쉬는 시간에 아이스크림도 먹고 시원한 수박도 먹었다
1학년 동생들이 힘들다고 해서 앞서서 먼저 가라고 도와주었다
선생님께서 걷다가 재미있는 얘기도 해주셔서 좋았다
앞으로 엄마랑 걷기 연습 많이 해서 내년에는 양평군을 걸어봤으면 좋겠다

우리면 순례대행진 / 이철원(3학년)

동네 다리를 건너니까 우리 논이 나왔다.
아직은 하나도 안 힘든데

우리 논을 지나니까 작은 개울이 나왔다.
다리가 조금씩 아파오는데

작은 개울을 지나니까 버스타고 다니는 큰길이 나왔다.
땀도 나고 그냥 앉아서 쉬고 싶은데

큰길을 따라 걸으니까 엄마랑 버스타고 갔던 면사무소가 나왔다.
아하! 걸어서도 올 수 있구나
다리도 아프고 땀도 났지만 재미가 있는 우리면 순례대행진이다.

학교 측은 ‘건강하고 활동적인 아동은 하루 1만2천보를 걸어야 정상’이라며 앞으로도 ‘걷기’를 학교생활의 최우선 과제로 여기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앞으로는 지역민들과 함께 하는 걷기 등 다양한 도보행사를 발굴할 예정이다.

곡수초등학교 http://koksu.es.kr

워크홀릭 담당기자 설은영 enyoung@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