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 20년 … 사회 갈등 ‘최후의 판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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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민주주의의 증인이자 나침반인 헌법재판소가 ‘성년’을 맞았다. 1일 창립 20주년이 된다. 헌법재판소법이 1988년 9월 1일 시행됐고, 같은 해 9월 15일 헌정 사상 최초로 9명의 헌법재판관이 임명됐다. 20년간 헌재가 처리한 헌법소원 등의 사건 수는 1만5663건이다. 이 중 500건, 214개 법 조항에 대해 위헌 결정을 했다. 1건의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을 기각했고 38건의 권한쟁의사건 중 5건을 인용했다. 정당 해산 심판은 한 건도 없었다. 헌법 불합치·한정 위헌 등까지 합하면 352개의 법 조문이 헌재 결정으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호주제, 동성동본금혼법, 영화 등의 사전심의, 재외국민의 참정권 제한 규정 등이 그것이다.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헌재가 출범하기 전까지 40여 년 동안 대법원 등에서 위헌 결정을 내려진 것은 4건에 불과하다. 이강국 헌재 소장은 “헌재는 창립 이후 국가·사회에서 발생하는 갈등과 분쟁을 종국적으로 해결함으로써 국가·사회를 통합해 왔다”고 평가했다. 헌재는 20주년을 맞아 ‘헌법재판소 20년사’를 발간했으며 1~4일 세계헌법재판소장회의를 서울 롯데호텔에서 연다.

◆정치적 대립의 해결사=2004년 3월 국회는 헌정 사상 처음으로 노무현 당시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를 의결했다. 국회의장석 위로 국회의원들이 던진 신발이 날아다녔다. 정치적 혼돈 상황이 이어졌다. 이런 상황을 해결한 것은 헌재였다. 같은 해 5월 14일 헌재는 노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를 기각했고, 이를 둘러싸고 벌어졌던 첨예한 논쟁은 일단락됐다.

헌재 관계자는 “사법기관이 국회와 대통령 간의 충돌을 종국적으로 결정한 세계사적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헌재는 올 1월엔 노 전 대통령의 정치적 중립 의무 위반 논란을 해결했다. 노 전 대통령이 ‘참여정부 평가 포럼’ 등의 연설에서 한나라당을 비난한 게 사태의 발단이었다.

노 전 대통령은 “대통령의 자연인으로서의 정치적 자유”를 주장했고, 한나라당은 “선거 중립 의무 위반”이라고 항의했다. 노 전 대통령이 공직선거법 조항이 위헌이라며 헌법소원을 제기하자 헌재는 “대통령 개인에게도 정치적 표현의 자유는 있지만, 선거 중립 의무와 충돌할 때는 후자가 우선”이라고 결정했다.

2004년 행정수도 이전을 놓고 빚어진 국가적 혼란 상황은 ‘관습 헌법’이라는 생소하면서 명쾌한 용어로 마무리됐다. 올 1월에는 ‘이명박 특검법’에 대한 헌법소원 사건을 접수 13일 만에 초고속 처리해 특검 수사가 예정대로 진행될 수 있게 했다.

◆“시대정신에 따른다”=오래전부터 가족관계를 규율해 왔던 호주제를 과거의 것으로 만든 것도 헌재였다. 2005년 2월 호주제를 규정한 민법 조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이후 호적등본은 가족관계등록부로 대체됐다. 99년 헌재는 군 가산점제에 대해 위헌 결정을 했다. 당시 네티즌의 찬반 논쟁으로 헌재의 홈페이지가 다운되는 사태가 빚어지기도 했다. 헌재의 당시 결정은 여성과 장애인에 대한 차별 금지와 보호의 대원칙을 확인한 것이다. 이공현 헌재 재판관은 “민주주의의 발전은 헌법재판 제도를 떠나서는 생각할 수 없다. 대한민국의 현대사가 이를 증명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승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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