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일곱살의 털
김해원 지음, 사계절, 224쪽, 8800원, 중·고생
주인공 송일호는 이발사의 후손이다. 할아버지는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 이발소인 태성이발소의 3대 이발사. 고조 할아버지가 고종황제 시절 체두관(단발령을 따르지 않는 백성들의 상투를 자르는 관직)이었다. 일호의 아버지는 가업을 잇기 싫어 일호가 태어나기도 전에 집을 나갔다.
고등학교 입학 후 일호는 ‘범생이 일호’란 별명을 얻는다. 앞머리 5㎝, 윗머리 3㎝, 뒷머리 3㎝. 일명 ‘오삼삼’규정에 딱 맞는 모범 두발 덕이었다. “열일곱 살의 머리카락에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욕망이 뒤엉켜 자라고 있어 그것들이 세상 밖으로 기웃거리기 전에 무질러야 한다”는 할아버지의 믿음이 반영된 결과이기도 했다. 어쩌면 아버지의 부재가 일호를 ‘범생이’로 만든 족쇄였는지도 모른다. “엄마는 지금처럼 모범생 아들이 좋아. 삐딱해지지 마. 삐딱이는 한 사람으로 족해”란 엄마 말에 명치끝이 뜨끔해지곤 했다.
하지만 두발 규정을 어긴 아이의 머리에 라이터를 들이대며 위협하는 체육교사을 보고 일호는 결국 삐딱해진다. 교사에게 달려들어 라이터를 빼앗았고, 학교와 두발 규제를 둘러싼 한판 싸움을 벌이게 된다.
일호의 변신이 책 전반부를 이끌어갔다면, 후반부는 할아버지의 변화에 초점을 맞춘다. 할아버지는 고지식한 인물의 대표격이다. 할머니 말에 따르자면 “이발 그거 몇 분이면 후딱 해치우는”걸 가지고 “가업을 잇느니 마느니”하면서 “하나밖에 없는 자식 집이나 나가게”한 사람이다. 이발소 자리가 재개발 된다는 소식에 주민들의 의견이 찬반으로 나뉘자 “나라를 위해 하는 일이니 반대를 해야 쓰겠습니까? 우리가 따라야지요”라며 애국심에 호소했을 정도다. 그 할아버지가 일호의 싸움에 동참하게 되는 과정이 통쾌하다.
작가 김해원은 가출한 아버지를 두고 “아버지와 아들의 심리적인 거리감을 상징적으로 나타낸 것”이라고 밝혔다. 그렇다면 이상형이 돼 돌아온 아버지는 사춘기의 건강한 성장통을 지켜주는데 아버지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장치 아닐른지. 부모들에게도 솔깃한 대목이다.
책은 제6회 사계절문학상 대상 수상작. 또 사계절출판사가 1997년부터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펴내는 ‘1318문고’ 시리즈의 50번째 책이기도 하다.
이지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