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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투데이

소련으로의 복귀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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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의심할 바 없이 러시아는 승자다. 이 전쟁으로 러시아는 남오세티야와 압하지야 지역의 분리론자들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게 될 것이다. 그루지야 군대에도 승리했다. 이는 러시아가 아프가니스탄부터 체첸까지 지난 몇 년간 겪은 굴욕 뒤에 얻은 결과다. 그루지야 군대가 강력하지는 않지만 미국에 의해 무장됐다는 점만으로도 러시아가 느낄 만족감은 크다.

러시아는 강력한 모습으로 국제무대에 돌아왔다. 경제침체로 러시아는 꽤 오랫동안 전략 문제에 있어 그들의 시각을 내세우지 못했다.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의 확대와 코소보 전쟁, 중동의 전략적 지도를 새로 짜려는 미국의 시도와 중앙아시아의 미군 주둔 문제 등에 무기력하게 동참해 왔다.

러시아는 2002년 나토와 전략적 파트너 관계를 맺었다. 이를 두고 러시아가 미국의 전략적 패권을 수용한 것처럼 해석하는 시각들이 있었다. 그러나 블라디미르 푸틴은 국내와 국제무대에서 러시아의 권위를 다시 세웠다. 에너지 가격 인상은 러시아의 국고를 다시 채워줬다. 러시아는 전략 문제에 있어 더 이상 방관자가 아닌 영향력 있고 적극적인 행동가가 됐다.

가장 큰 손해를 본 사람은 그루지야의 미하일 사카슈빌리 대통령이다. 그는 엄청난 실수를 저질렀다. 그는 미국의 지원을 과대평가했고 러시아의 대응을 과소평가했다. 러시아가 그에게 순순히 남오세티야를 내줄 것으로 생각했을까. 러시아의 강력한 대응을 고려했더라도 희생자라는 역할을 받아들이고 미국의 지원을 얻을 수 있다고 여겼을까. 만약 그렇다면 그는 군사적 동맹과 말뿐인 결속 사이에서 헷갈린 것이다. 미국 워싱턴에서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러시아와 벌이고 있는 그의 치열한 정치적 투쟁과 군대의 무장을 돕고 나토 가입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열의를 보이자 그는 고무됐다. 그러나 부시는 아프가니스탄·이라크 이외에 새로운 전선을 열 능력도 준비도 없었다. 남오세티야와 압하지야와 관련해 명백한 손실을 입지 않았더라도 사카슈빌리는 책임을 져야 한다.

그루지야와 러시아의 전쟁은 미국 주도의 단극화 세계라는 명제의 종식을 의미한다. 그루지야의 패배는 그것을 막을 수 없는 미국의 동맹국이 겪은 패배 중 하나다. 미국의 단호한 태도는 말에 불과했다. 극초강대국인 미국은 주요한 전략적 사건 앞에서 무능했다. 부시 미 대통령은 도덕적이며 이데올로기적인 승리로 이러한 전략적인 패배를 보상할 수 없다. 그가 이라크전을 일으키고 이스라엘의 대레바논 전쟁을 지지했다는 점을 떠올린다면 그루지야 주권과 영토 보전을 존중하는 그의 외침은 오히려 이상하게 들린다. 코소보의 독립은 받아들이면서 남오세티야 또는 압하지야는 안 된다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 그루지야의 영토는 보전해야 하면서 세르비아는 왜 아닌가.

그러나 우리는 오해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소련 또는 냉전의 재탄생을 목도하고 있지 않다. 이미 냉전의 한 축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다만 이익을 위해 최선을 다해, 최대한 노력할 강력한 국가들의 무력정책의 귀환을 목격하고 있을 뿐이다.

서방 국가들은 러시아도 그들의 이익이 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서구가 그들의 이익이 낫다는 것을 보여주려면, 전략적 상황을 정확하면서도 현실적으로 분석해야 한다. 러시아가 자신의 이익에 반한다고 생각하는 결정을 따르도록 강요할 수 있다는 착각에 빠져서도 안 된다. 러시아가 전 세계적인 문제에 대한 책임감을 갖고 현명한 태도를 수용하는 것을 지켜보는 것이 낫다.

만약 서방 국가들이 그들의 가치를 드러내고 싶다면 그 가치에 대해 확고한 모습을 보이고 선택적인 적용을 피해야 한다. 동맹 국가냐 적이냐에 따라 비슷한 상황임에도 다르게 대응하는 이중적 기준으로 생각하기를 멈춰야 할 때다.

파스칼 보니파스 프랑스 국제관계 전략문제연구소장

정리=하현옥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