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작기행>생명의 가치-스티븐 켈러트 著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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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인간은 신의 모습을 따라 창조되었으며 다른 일체의 삼라만상을지배하는 위치에 있다고 기독교는 가르쳤다.이 가르침은 자연과 인간을 대립시켜 정복과 지배의 대상으로 규정했으며,근대서양의 과학문명이 이 방향으로 펼쳐져 나온 것이라 한다 .
이와 달리 불교 등 동양의 종교에서는 자연을 존중하고 조화를추구하는 전통을 보여 왔다.인간은 자연의 일부로 간주되었고 자연 속에서 아름다움과 가치를 찾는 것이 인생의 중요한 목표가 되었다.인간의 지혜는 자연과 편안한 관계를 찾는 데 집중되었다. 이런 전통의 차이가 자연에 대한 현대인의 태도에 어떻게 반영될까.불교의 영향을 받은 동양인들은 기독교의 영향을 받은 서양인들보다 환경위기에 더 민감하고 자연보호의 명분에 더 쉽게 설득될까.스티븐 켈러트는 『생명의 가치』(원제:Th e Value of Life, Island Press刊)에서 일본.미국.독일인의 자연의식에 대한 다년간의 연구에 입각해 「No」라고말한다. 켈러트의 의식조사는 자연에 대한 다각적 관점을 기준으로 행한 것이다.그는 지금까지 현대인의 의식을 지배해온 「공리적」관점에만 얽매여서는 지구생태계가 직면한 위기를 제대로 인식할 수 없다는 전제아래 몇가지 관점을 덧붙였다.자연과의 접촉을추구하는 자연주의 관점,체계적 이해를 꾀하는 생태론의 관점,직관적 기쁨을 얻는 심미적 관점,언어와 사고의 좌표를 얻는 상징적 관점,개별적 연대감에 기초한 인도주의 관점,생을 공유하는 존재들에 대한 도덕적 관점,인간의 지배 대 상으로 보는 권능의관점,그리고 공포심과 혐오감으로 자연을 바라보는 부정적 관점이다. 켈러트가 가장 집중적으로 조사한 미국인에 있어서는 연령과교육수준에 따른 관점 분포의 차이가 상당히 두드러진다.젊은 층과 교육수준이 높은 층에서는 자연보호를 뒷받침하는 자연주의.생태론.인도주의.도덕의 제 관점이 우세한 반면 나이든 층과 교육수준이 낮은 층에서는 공리적 관점과 권능의 관점이 두드러진다.
여성의 경우 전반적으로 남성에 비해 인도주의와 도덕의 관점이 매우 강하고 공리와 권능의 관점이 약하다.
켈러트가 조사한 일본인의 자연의식은 전체적으로 미국인의 경우와 크게 다르지 않다.오히려 연령과 교육수준에 따른 의식구조의차이가 미국보다 적다는 점에서 자연보호에 적극성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분석이다.거꾸로 미국보다 서양문명의 본산 에 가까운 독일쪽이 자연의식의 분포와 구조에서 「보호」쪽으로 많이 기울어져나타난다.
문화적 전통보다 현재 처해 있는 사회경제적 상황이 자연에 대한 현대인의 의식을 결정하는데 더 큰 몫을 하는 것이라고 켈러트는 풀이한다.개발도상국인 남부아프리카의 보츠와나(아직도 소수의 부시맨이 수렵.채집 경제를 유지하고 있는 곳) 를 이들 산업선진국과 비교한데서 이 풀이는 더욱 분명해진다.보츠와나에는 위에 열거한 제 관점과 구별되는,자연을 극도로 존중하고 외경하는 종교적 관점이 전통으로 남아 있다.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개발의 이념을 반영하는 물질주의적.부정 적 관점이 강하게 나타난다. 인간이란 「존재의 큰 사슬」이라는 생명의 흐름 속에 위치한 존재기 때문에 원초적으로 생명을 좋아하고 아끼는 「호생성(biophilia)」의 본성을 가진 것이라고 저자는 믿는다.
동양의 「호생지덕(好生之德)」에 가까운 개념으로 보인다 .
이 본성이 현대의 생활조건 속에서 흐려지고 약해진 결과 인간사회는 그 본성에 어긋나는 방향으로 치달려 왔다는 것이다.자연과의 관계를 풀어나가는데 거의 전적으로 공리적 관점에만 얽매이게 된 것이 그 두드러진 증상이다.눈에 보이는 물 질적 만족에급급하는 동안 심미적 가치.도덕적 가치 등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무너져내려 결국 인간 자신이 소외되기에 이른다.자연 보호란자연을 위한 것이기에 앞서 인간성 회복을 통해 인간 자신을 구원하는데 의미가 있다는 것이 켈러트 의 주장이다.
과연 호생지덕이 인간의 본성이라고 본다면 자연보호운동은 엄청나게 큰 도덕적.윤리적 잠재력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그러나 이런 명제가 개인의 믿음을 넘어 사회의 패러다임으로 나아갈 수있는 것일까.사회학적 의식조사와 분석을 통해 호 생지덕의 개념을 직관의 영역에서 과학적 가설,그리고 이론으로 키워내는 것이이 책의 목적이다.
이 목적을 성취한 수준은 그리 만족스럽지 않다.계량화할 수 없는 가치를 과학적으로 다루는 작업의 한계가 드러나 보인다.
인간은 풍요로움을 추구한다.그 풍요로움을 물질에서만 찾을 것이 아니라 문화와 자연에서도 찾아야 한다는 당연한 사실을 이 책은 새로운 감각으로 음미하게 해준다.
철학적 명제를 과학의 영역으로 이끌어가는 하나의 새로운 방법이 이런 노력에서부터 풀려나올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품어본다.
예일대 임학.환경학 교수로 70년대부터 자연에 대한 현대인의의식을 조사해 오고 있다.근년에는 이 조사연구 결과를 하버드대생물학 교수 에드워드 윌슨의 「호생성」개념에 접목하는데 주력해93년 윌슨과 공편으로 『호생성의 가설』을 펴 낸 바 있다.
김기협 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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