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달아 높이곰 돋아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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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사마귀는 목을 지니고 있는 거의 유일한 곤충이다.여느 곤충들처럼 사마귀의 머리는 곧바로 가슴에 이어져 있지 않다.더욱이그 목은 매우 길고 구부렸다 폈다,뒤로 젖혔다 앞으로 되돌렸다자유자재로 움직인다.수컷과 교미(交尾)하며 수 정(受精)하는 사이에 암컷은 머리를 뒤로 돌려 조용히 그 「쾌락」의 상대를 문다.머리부터 먹기 시작하는 것이다.그래서 우리는 이따금 머리가 없는 교미중의 수컷 사마귀를 발견하게 된다.
허리까지 먹힌 채 대롱대롱 암컷에 매달려 있는 수컷을 보게 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암컷은 이와같이 수컷으로부터 성애(性愛)의 쾌락과 식탁의 쾌락까지를 동시에 얻어낸다.그 이중(二重)의 쾌락은 암컷이 수컷의 배를 먹기 시작하면서 끝 난다.수컷은잔해(殘骸)가 되어 땅으로 굴러떨어지며,암컷은 따라내려가 「배필」을 깨끗이 먹어치운다….
곤충학자 파브르의 관찰을 빌려 구르몽은 『사랑의 자연학』 속에서 이렇게 적었다.그 잔인한 광경이 아리영을 몸서리치게 했다. 불쌍한 수컷들! 육신을 온통 바쳐 오로지 암컷의 섹스와 식탁을 위해 봉사하다 죽는 인생이 아닌가.
우변호사 아내의 뒷모습에서 불현듯 암사마귀의 서슬을 보게 된것은 무슨 까닭일까.그것은 그녀가 입은 사마귀빛 초록 원피스 탓만도 아니고,항아리와 꽃다발을 함께 안고 가느라 목을 길게 내뺀 자세 탓만도 아닐 것이다.어쩌면 그녀에겐 암사마귀 같은 데가 있는 것은 아닐까.두려웠다.
콕 로빈은 넌지시 아리영을 지켜보고 있었다.우변호사의 아내가나타났을 때 그는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아까 호텔에서 승강이를 벌인 여인이 서여사 방에까지 나타나 생판 딴얼굴로 눈웃음치며 인사했으니,영문을 모르는 그로서는 헷갈릴 수 밖에 없는 노릇일 것이다.일이 여기 쯤에 이르렀으면 모든 것을 그에게 털어놔야 될 법하다.
서여사는 단원(檀園) 김홍도(金弘道)와 도슈사이 샤라쿠(東洲齋 寫樂)와의 연관성에 큰 관심을 보였다.
근세 일본의 천재화가 도슈사이 샤라쿠는 1794년 음력 5월부터 이듬해인 1795년 정월까지의 약 10개월 사이 무려 1백42점이나 되는 목판화 그림을 폭발하듯 그리고 나서 홀연히 사라진 수수께끼의 인물이다.언제 어디서 태어났는지 ,언제 어디서 죽었는지도 전혀 알려져 있지 않다.자손도 없고 아내도 없었다. 1794년 5월이라면 김홍도는 충청도 연풍(延豊) 현감 벼슬을 지내고 있었고,그 무렵 연풍은 몹시 가물어 3년째 기근(饑饉)에 허덕이고 있었다.김홍도는 정말 돈 벌 목적으로 일본에 밀입국(密入國)하여 그림을 그리다 온 것일까.
글 이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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