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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빈곤층 자립 도울 한국판 그라민 뱅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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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하나은행이 다음달부터 ‘마이크로 크레디트’ 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마이크로 크레디트란 제도권 금융회사를 이용하기 어려운 저소득 금융 소외계층에 무담보·무보증으로 창업자금을 빌려주는 제도다. 방글라데시의 무함마드 유누스가 1976년 고리대금에 시달리던 빈곤 여성들이 자활할 수 있도록 낮은 이자로 소액자금을 빌려주는 그라민 뱅크를 설립한 것이 효시다. 하나은행은 일단 100억원을 출연해 ‘하나희망재단’을 설립한 후 시민단체인 ‘희망제작소’의 도움을 받아 창업 희망자를 선정해 대출에 나설 계획이라고 한다. 최대 2000만원을 빌려 첫해는 연 3%의 낮은 이자만 내다가 2년째부터 4년간 원금과 이자를 나눠 낼 수 있으니 창업할 돈이 없어 발을 동동 구르던 저소득층에는 참으로 희소식이 아닐 수 없다.

우리나라엔 신용불량이나 담보 부족 등의 이유로 제도권 금융회사의 문턱을 넘지 못하는 이른바 금융 소외계층이 720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들은 아무리 자활 의지가 굳고 참신한 사업 아이디어가 있어도 얼마간의 창업자금을 구하지 못해 빈곤 탈출의 엄두를 내지 못하는 실정이다. 최근에는 고물가·고금리·고환율의 3중고에 시달리면서 중산층에서 추락하는 가계가 늘고 있어 저소득층 대책은 더욱 시급해졌다. 그러나 이들을 돕는다고 최저생계비 이상의 돈을 정부에서 무한정 대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가장 좋은 방법은 스스로 일어설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마이크로 크레디트는 이런 점에서 정부가 하지 못하는 자립형 복지제도의 역할을 수행하는 셈이다.

우리나라에는 이미 시민단체가 설립한 사회연대은행과 신나는 조합, 아름다운 세상 기금 등이 운영 중이고, 지난 6월 ‘소액서민 금융재단’이 유사한 사업을 시작했다. 하나은행의 사업 참여가 뜻깊은 것은 수익성을 추구하는 상업은행이 금융 소외계층에 자발적으로 눈길을 돌렸다는 점이다. 이 은행은 성과를 보아 앞으로 출연금을 300억원까지 늘리겠다고 한다. 아무쪼록 운영에 내실을 기해 한국판 그라민 뱅크의 대표적인 성공사례가 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