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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회 미당·황순원 문학상] 최종 후보작 지상중계 ⑧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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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돌층계를 만드는 건 시를 짓는 작업”

장석남의 ‘석’이 혹 ‘돌 석(石)’자 아니냐고 농을 걸었다. ‘주석 석(錫)’자라 답하는 시인의 얼굴이 환했다. 돌을 참 좋아하는 시인이다. 갈팡질팡 고민 끝에 대표작으로 택한 시도 ‘돌층계’다.

“돌은 아름다워요. 어떤 디자인도 따를 수 없죠. 또 돌이 나이를 많이 먹었잖아요.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가장 밀접한 자연적 사물이면서 그 안엔 가장 민감한 시간이 함축돼 있죠.”

가장 오래된 물건. 그런 돌을 날라 층계를 만든다. ‘오르락내리락 종교와도 같은, 믿음과도 같은 리듬이 생겨’나니, 돌층계를 만드는 건 곧 시를 짓는 행위가 된다. 돌층계 앞엔 ‘붉은 꽃바다’가 너울댄다.

“옛날 정원은 바위를 놓고 그 앞에 꽃을 심어 영원성과 일시성의 조화를 이뤘어요. 사실 바위도 꽃인데, 큰 꽃 앞에 작은 꽃이 있는 셈이죠.”

그의 시 세계도 돌과 꽃이 어우러진다.

‘한옥 짓는 마당가/널빤지 위에 누워 낮잠 들어가는 대목수의 꿈속으로 들어가/잠꼬대의 웃음으로 배어나오는/작약 밭의 긍정, 긍정, 긍정, 긍정’(‘문 열고 나가는 꽃 보아라’ 중)

그늘 한점 없이 환한 시, 서정만을 노래하는 시, 마냥 긍정하는 시에 마음이 환해진다. ‘긍정, 긍정, 긍정, 긍정’ 따라 읽다보면 입술 사이로 작약 꽃이 피는 듯하다.

‘작약 싹 올라온다/작약꽃이 피어 세상을 보다가/떨어질 것을 생각한다’(‘작약’ 중)

시인은 근래 작약을 심었다. 비단처럼 겹겹이 싸인 꽃잎이 꼭 눈동자 같은 꽃.

“작약이 뭘 보러 와서 뭘 보러 갈까. 비밀스러운 건 꽃 속에 다 숨겨두면, 꽃이 매번 피어서 그 얘기를 해주지 않을까.”

시의 세상에선 사람만 꽃을 보는 게 아니라, 꽃도 사람을 본다는 게다.

시인은 ‘촛불의 千手千眼’이란 시에서 ‘지금/맨손바닥 위에 촛불이 한 그루 떠 있다/맨손바닥 위에 촛불이 한 포기 떠 있다/맨손바닥 위에 촛불이 한 송이 떠 있다’고 노래했다. 불은 예쁜 꽃이다. 불꽃은 부뚜막에 뿌리가 닿는다. 인간이 태초에 불을 다스리기 시작한 곳이다.

‘그녀가 가진 첫 방은 부뚜막이었다 한다’(‘부뚜막 방’ 중)

무엇이든 집어삼킬 수도 있을 무서운 불은 부뚜막 안에선 어미 무릎에 기댄 듯 얌전해진다. 어머니가 평생 가장 오래 머물렀을 공간. 어머니 품처럼 따뜻한 장소다.

‘천정이 꺼멓게 그을린 부엌 찬 부뚜막에 수십 년을 앉아서 나는/고구려 사람처럼 현무도 그리고 주작도 그린다/그건 문자로는 기록될 수 없는 서룬 사랑이다’(‘부뚜막’ 중)

현무·주작이 벽화로 남아있는 고구려 무덤처럼 불을 땐 세월만큼의 그을음이 벽화가 된 어머니의 부엌. 어린 시절의 시인은 온기 남은 부뚜막에서 어머니의 체온을 느끼며 부지깽이로 그림을 그렸을 게다. 그런 부뚜막도 결국 돌이다. 시인에게 돌은 꽃이요, 불이며, 부뚜막이었고, 또한 어머니의 사랑으로 함축된 세월을 아로새긴 시(詩)였다.

 글=이경희 기자, 사진=김성룡 기자


“처음엔 여자, 지금은 아들위해 글 써”

“고백하자면요, 저는 다른 이유로 소설을 쓰기 시작한 건 아니고요, 사실 여자한테 작업 거느라, 작업의 일종으로 소설을 쓰기 시작했어요. 악기도 하나 다루지 못하고, 그림에도 별 소질 없고, 축구도 잘 못하고, 영화에도 그리 구미가 당기지 않으니, 어쩌겠어요? 그저 편지를 쓰고, 또 쓰고, 또 쓸 수 밖에요. 모의고사 날짜가 다가오든 말든, 체력장이 코앞에 다가오든 말든, 라훌라, 편지만 썼어요.” 이기호가 지난해 한 문예지(문학과 사회)에 쓴 글이다.

등단 후 ‘작업’의 대상은 불특정 다수로 바뀌었지만 그는 여전히 라훌라, 소설을 쓴다. 그것도 아주 다양하고 변화무쌍한 화법을 구사하면서 말이다. 마치 작업의 정석에 ‘지루하면 안 될 것’이란 항목이 있는 것처럼. 때로는 래퍼로(‘버니’), 때로는 성경 말씀으로(‘최순덕 성령충만기’), 그러다 지겨워지면 소설 읽어주는 사람(‘나쁜 소설’)으로 분한다. 말하자면 “잃어버린 독자들을 다시 이야기 마당으로 불러 모으기 위해 그는 재미있는 이야기꾼이 되었다. 가장 재미없고 신산한 시절에 말이다.”(우찬제 문학평론가)

이번엔 작업의 대상이 조금 다르다. 그의 아들이다. “첫째 아이가 태어난 지 얼마 안 됐을 때였어요. 마음이 좀 이상하더라고요. 아버지가 된다는 것에 큰 책임감도 생기고, 생각이 많았죠. 그 때 대관령에 갔는데 바람마을이라고 있대요.” 바람마을에서 작가는 ‘목련바람’을 구상했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가지는 어쩔 수 없는 죄의식이 있는 것 같아요.” 그 죄의식은 죄와는 다르다. 잘못해서 미안한 게 아니라 그냥 미안한 마음, 퍼주고 또 퍼주어도 모자란 모든 부모의 똑같은 심정이다. “아이 백일 때도 함께 못 있어줬거든요”라며 작가는 허허 웃는다.

소설은 이기호가 지금까지 보여줬던 위트나 해학에서 살짝 벗어나 “시적인 서정성을 보여준다.”(김미현 예심위원) 바람이 자꾸 ‘아가’를 부르며 이야기를 들려주고, 그 이야기는 곧 아버지의 이야기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죄를 고백하는 모양새다. “예전에 이기호의 등장인물들은 자의식이 아주 희미한 존재들로, 명령을 철저하게 이행하는 과정에서 어긋나는 상황들을 보여줬었다. 그런데 이 작품에는 놀랍게도 죄의식에 대한 자각의 장면이 있다.”(김동식 예심위원)

작가는 에세이를 통해 어머니와의 대화를 회상한 적이 있다. 어머니가 해주신 음식 외에는 드시질 않는 아버지를 보며 이기호는 “그게 다 어머니 잘못이에요. 어머니가 아버지 식성을 그렇게 만든 거에요”라고 말한다. 어머니가 대답하신다. “이 나이까지 살아보니 아무것도 남긴 게 없는 거야. 그래, 내 한 사람만은 나를 기억하게 해야지, 한 사람만은 내가 해준 밥을 기억하게 해줘야지 하는 마음으로 음식을 만들었더니, 그게 그렇게 됐네.” 이기호가 아들에게 하고 싶은 말, 소설에서 차마 다 하지 못한 말이 바로 그것일 테다.

글=임주리 기자, 사진=이기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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