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릿하고 위험한 사춘기의 혼란 속으로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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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호 10면

뮤지컬 ‘사춘기’
설치극장 정미소 9월 7일까지
월·화·목·금 오후 8시, 수 오후 3시·8시,
토 오후 3시·7시, 일 오후 3시
문의 02-3673-2001

뮤지컬 ‘사춘기’는 방황하는 청소년들의 우정·사랑·일탈·죽음에 대한 이야기다. 시험 날, 냉소적 눈빛의 전학생이 만점을 받는다. 반장을 비롯한 패거리가 기를 꺾어 놓으려 들다 오히려 그의 위악적 매력에 반한다. 늘 『파우스트』를 옆구리에 끼고 다니는 전학생은 자신의 블로그 ‘메피스토’에 아이들을 초대한다. 염세적이고 반항적인 궤변으로 도배된 블로그는 온갖 커닝 방법을 알려주며 부정 행위를 부추기고 적나라한 성적 내용으로 아이들을 유혹한다.

들끓는 청춘의 욕망을 억압적 부모와 공부에 짓눌리며 사생아, 매춘부의 동생 등 개인적 고민도 안고 있는 아이들. 그들에게 다가온 ‘발푸르기스의 밤’은 위험하지만 유혹적이다. 발푸르기스의 밤은 원래 겨울이 끝나고 봄을 맞아 큰 모닥불을 만들어 태우는 마녀들의 축제다. 독일의 대문호 괴테의 작품 ‘파우스트’에서 악마 메피스토는 파우스트를 그 불꽃 속으로 데려가 환상을 보여주며 지옥으로 유혹한다. “발푸르기스 어두운 밤, 축제의 밤, 달빛도 차마 닿지 못하는 인적 없는 숲 속, 마녀들의 보물 훔쳐다 줄게 너에게, 나랑 같이 춤추러 갈래? 친구의 등을 찌른 작은 칼, 소녀의 몸에 부은 죄의 잔.”

이 뮤지컬에서 ‘밤’은 막다른 절망의 시공간이자 유일한 분출구이기도 하다. 인생의 봄인 사춘기의 에너지와 화사함이 어둡고 음침한 밤의 이미지와 그렇게도 잘 어울리는 것은 본래 그런 것인지 연극의 성과인지 궁금하다. 원작은 100년 전 독일의 극작가 프랑크 베데킨트의 동명 희곡이다. 엄격한 청교도 시대에 청소년의 섹스·폭력·자살을 다루어 큰 충격을 주었고 오랫동안 공연이 금지되었다. 흥미롭게도 2006년 같은 원작의 뮤지컬이 미국에서 초연돼 2007년 토니상 8개 부문을 수상했다.

국내서도 내년 6월 라이선스 공연이 오른다. 그러나 원작에 충실한 미국의 각색과 달리 극단 정미소의 창작 지원 프로젝트 두 번째 작품인 한국의 각색은 기본 설정만 제외하고 완전히 새로운 창작극이다.여섯 명의 남자 배우, 한 명의 여자 배우, 총 일곱 명의 배우가 펼쳐 보이는 무대는 소녀풍 코미디와 소년풍 누아르를 빠르게 오가며 박진감 있게 진행된다.

노래와 춤에도 어릿한 풋풋함과 어른스러운 느끼함이 변화무쌍하게 교차된다. 대사와 선율이 1차원적 단순함으로 관객을 편하게 만든다면, 이야기를 서로 얽고 짜릿한 포인트를 적재적소 배치하고 쇼로 발전시킨 3차원적 구성은 극장까지 찾아가야만 경험할 수 있는 뮤지컬 나들이의 참맛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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