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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오바마 믿어 달라” … 흥행몰이 나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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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버락 오바마 미국 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20일 버지니아주 린치버그의 EC글래스 고등학교에서 열린 타운 홀 미팅에서 유권자들과 만나고 있다. 민주당 전당대회는 25일부터 나흘간 열린다. [린치버그 AP=연합뉴스]

미국 민주당은 25~28일 콜로라도 주 덴버에서 열리는 전당대회를 준비하면서 4년 전보다 1000만 달러가 많은 6000만 달러를 썼다. 이번 전당대회는 오바마에게 아주 중요하다. 그의 지지율이 하락하고 있고, 몇몇 조사에선 공화당의 존 매케인 상원의원에게 추월당한 상황에서 열리기 때문이다.

전당대회는 통상 대선 후보의 상승 효과(bounce effect)를 창출한다. 각종 이벤트를 통해 후보의 인간적 면모와 통치 비전을 부각하고 당의 단합을 과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 덴버에는 기자만 1만5000여 명이 몰려든다. 주요 행사를 TV로 지켜볼 미국인은 하루 평균 약 2000만 명으로, 2004년의 1550만 명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오바마는 대회를 통해 세 가지를 보여준다는 목표를 세웠다. ^그가 미국의 가치를 대변할 수 있는 ‘진성 미국인’이고, 미국을 이끌 역량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 ^당을 단합시킬 수 있다는 자신감 ^매케인의 승리는 조지 W 부시 대통령 정권의 연장이라는 논리 확산이다. 오바마 측은 이런 목표 달성에 보탬이 될 사람들을 연사로 골랐다.

첫날 행사를 이끌 부인 미셸은 ‘오바마의 미국 이야기’에 연설의 초점을 맞출 계획이다. 당 선거전략가 애니타 던은 “미셸은 오바마가 미국인으로서 어떻게 살았는지를 소개하면서 남편이 보통사람의 삶을 잘 이해하고 있다는 걸 알릴 것”이라고 말했다.

명감독 데이비스 구겐하임이 만든 오바마의 인생 다큐멘터리를 이날 상영하는 것도 그런 맥락에서다. 구겐하임은 앨 고어 전 부통령의 환경 다큐멘터리 ‘불편한 진실’과 1968년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 때 암살당한 로버트 케네디의 다큐멘터리를 제작한 감독이다.

민주당이 ‘미국인 오바마’를 강조하기로 한 까닭은 케냐인 아버지에게서 태어나 소년 시절 이슬람권인 인도네시아에서 4년을 보낸 오바마에 대해 “진짜 미국인인가”라는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대회 동안 매일 공식행사 개막과 폐막 때 기도를 하는 것도 오바마가 미국인의 가치를 존중한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다. 기도는 한국인 강진호 목사 부부 등 여러 종교인이 맡을 예정이다.

둘째 날인 26일엔 오바마와 매케인의 차이를 강조하고, 당의 단합을 과시하는 이벤트가 열린다. 마크 워너 전 버지니아 주지사가 기조연설자로 나서 ‘오바마=변화, 매케인=부시 3기’라는 논리를 펼 계획이다. 힐러리는 오바마를 지지하는 연설을 한다. 그의 연설은 당 단합의 강도를 재는 척도가 될 것이다.

27일엔 부통령 후보가 연설하며 대의원은 호명 투표로 대통령 후보를 선출한다. 후보자 명단엔 힐러리의 이름도 올라 있으나 투표에서 힐러리가 이길 가능성은 없다. 그러나 투표 도중 힐러리 지지자 중 일부가 소란을 피워 분위기를 해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마지막 날인 28일 오바마는 대회 장소를 8만여 명 수용 가능한 풋볼 경기장으로 옮겨 후보 수락 연설을 한다. 28일은 흑인 민권운동가 마틴 루터 킹 목사가 45년 전 인종차별 철폐를 강조하며 “나에겐 꿈이 있다”는 연설을 한 날이다. 이날을 택한 건 ‘미국이 변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다. 84년과 88년 민주당 전당대회가 끝나자 당 후보들(84년 월터 먼데일, 88년 마이클 듀커키스) 지지율은 10% 이상 뛰었다. 하지만 그들의 상승세는 오래 가지 못했다. 공화당이 공격을 강화하자 둘의 지지율은 뚝 떨어졌다. 민주당은 2004년 대회를 잘 치렀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후보였던 존 케리의 지지율은 거의 변하지 않았다. 전당대회보다 후보 자신의 경쟁력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오바마도 마찬가지다. 그의 진영이 이벤트는 잘 준비한 것으로 보이지만, 흥행 성공이 대선 승리를 담보하진 않는다. 오바마가 대회를 통해 유권자에게 심어줘야 할 건 “오바마를 믿어도 된다”는 확신이다. 그의 경험 부족을 우려하는 이들이 그런 믿음을 갖지 못할 경우 오바마는 100년 전 윌리엄 제닝스 브라이언이 이곳에서 민주당 후보로 선출됐으나 대선에서 패배했던 ‘덴버의 실패’를 재연하는 후보가 될 수도 있다.

워싱턴=이상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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