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출판사 서광사 최근"칸트철학:자연과 자유..." 펴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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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출판도 사업인만큼 합리적 경영만이 살 길이다.』 속성상 대중독자를 확보하기 힘든 철학서를 전문으로 출판해오면서도 그동안결코 손해를 보지 않은 서광사(대표 金信爀.53)가 설립 22년만에 3백종의 책을 내놓아 화제다.
영예(?)의 책은 한국불교발전연구원장 김용정(전동국대교수)씨가 박사학위논문을 보완해 펴낸 『칸트 철학:자연과 자유의 통일』. 엄격히 따지면 지난 79년 존 롤스의 명저 『사회정의론』번역출간 이후 17년만의 일이다.
사장을 포함해 정규직원이 8명에 불과한 미니 출판사인 서광사가 관심을 끄는 이유는 3백권이라는 상징적 숫자보다 한 분야를파고드는 외곬 출판사가 드문 우리 출판계에 그것도 잘 안나가는철학서를 고집하면서도 적자 없이 22년간을 버 텨온 사실에 모아진다. 지난해 매출은 6억원에 이익은 1천2백만원.큰돈은 아니지만 고리타분한(?)철학책으로 지금까지 흔들림 없이 버텨온 사실 자체가 대견스럽다.책 1종의 1년평균 판매부수는 4백50여권.대중서가 아닌 탓에 초판 인쇄부수도 대개 1천5백권 을 넘지 않는다.그래도 20여년간 월급 한번 미룬 적이 없다고.비결을 묻는 기자의 호기심에 金대표는 한마디로 경영 합리화라고 대답한다.
『이미 10년전에 주5일 근무제를 도입했습니다.직원들이 다소피곤하더라도 근무시간은 밀도있게 관리했지요.퇴근후 10분이라도남게 되면 보고해야 합니다.특근도 불가피한 경우가 아니면 거의없어요.』 金씨는 7년전부터 판매현황.재고관리.세금내용.판공비등을 전산처리,투명한 체제를 마련했고 93년에는 국내 최초로 인세 후불제를 도입,1년에 두차례씩 정확한 판매실적에 따라 지불했다.여기서 발생하는 이득만 한해에 1천여만원.물론 출 판사와 저자.번역자의 신뢰관계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또 같은해에 운송.배본을 출판협동조합에 일임,간접비용을 줄였다.그래서서광사에는 수금을 전담하는 영업사원이 아직 없다.금전에 관련된제반업무가 온라인으로 처리되기 때문이다.
『한번 낸 책을 절대 죽이지 않는다는 것이 신념입니다.바람타는 책들은 2년을 못넘기지만 우리 책들은 생명력이 길어요.입문서들은 대부분 10쇄를 넘기지요.대신 책 선택에 심혈을 기울입니다.광고비 부담이 적고 종수가 쌓이다보니 운영에 는 큰 어려움이 없습니다.』 현재 서광사 도서목록에 오른 책들은 철학의 거의 모든 분야를 포괄하고 있다.
개론서부터 고대.중세.근세.현대.사회.분석.언어.심리.과학.
환경.종교철학을 거쳐 현상학.해석학.포스트모더니즘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을 자랑한다.金대표는 18년전 계약,올해부터 나올 그리스철학의 원전 주석과 번역작업이 가장 의미있는 일 로 남을 것같다고 말한다.
金씨의 이력도 흥미롭다.원래 희망은 신부.60년 가톨릭신학대에 입학했으나 고민 끝에 부제 서품 3개월전에 성직자의 길을 포기했다.이후 그는 삼화출판사에 잡지기자로 입사하고 삼화인쇄소에서 6년동안 출판실무를 습득했다.
『처음에는 철학.신학서적 리프린트로 시작했습니다.철학서를 내겠다고 특별히 의도한 적은 없었는데 오늘까지 왔어요.그러나 남들이 꺼린 분야를 고수한 점이 오히려 경쟁력을 갖게 한 것 같아요.』 출판의 소임은 학문의 뒷바라지라고 못박은 그는 『큰돈못번 자신을 소 닭 보듯 했던 자녀들이 커가면서 아비를 인정하는 모습을 볼 때 인생의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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