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념경제학] 경기 나쁜데 어음 부도율 하락 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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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경기 둔화에도 어음 부도율은 되레 3개월째 하락했다. 19일 한국은행은 지난달 어음 부도율이 0.02%로 전달보다 0.01%포인트 떨어졌다고 밝혔다. 어음 부도율은 부도난 어음·수표 금액을 전체 교환 금액으로 나눈 것이다. 2007년과 2006년 7월의 어음 부도율도 올해와 같은 0.02%였다. 어음 부도율로만 보면 기업들의 자금사정은 예년과 큰 차이가 없는 셈이다.

이런 착시 현상은 2000년대 들어 어음 결제 비중이 줄고 전자결제의 비중이 크게 늘면서 생겼다. 기업들도 어음 대신 은행의 구매자금 대출 등을 많이 활용하고 있다. 구매자금 대출은 물품이나 용역을 사고 대금을 은행 대출로 지불한 뒤 기일이 되면 대출을 갚는 방식이다. 이 경우 기업이 돈을 못 갚더라도 부도가 아니라 연체로 처리된다. 경기가 나빠 은행에 돈을 제때 못 갚는 기업이 많아지더라도 어음 부도율은 기업 현장의 체감만큼 치솟지 않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 기업들이 느끼는 자금 사정은 이와는 천양지차다. 중소기업들의 대출 연체율이 높아지고 있는 게 그 징표다. 중소기업 대출의 부실채권 비율은 지난해 6월 0.97%에서 올 6월 1.06%로 높아졌다. 그나마 은행들이 중소기업 대출을 크게 늘리고 상당량의 부실 채권을 정리한 결과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전자 결제가 늘면서 어음부도율이 경기 지표로서의 의미가 줄어든 건 사실”이라면서도 “장기적으로 보면 경기와 연관성이 깊다”고 말했다. 

조민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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