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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훈기자의사람그리고세상] “아이들은 모두 새 도화지 … 여기에 한국의 색 칠해야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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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김동휘 사장이 파주 출판단지에 있는 ‘탄탄스토리하우스’ 4층 북카페에서 책을 펼쳐보이며 환하게 웃고 있다. [사진=김정훈 인턴기자]

6월 20일 아침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의 한 호텔. 막 잠에서 깬 50대 중반의 한 한국인이 평소 습관처럼 노트북을 연다. 밤새 들어온 e-메일을 점검하기 위해서다. 사업을 하는 그에겐 첫 일과이자 빼놓을 수 없는 일이다. 여느 때처럼 쓰잘머리 없는 것들이거니 하면서도 혹시나 하는 생각에 대충 메일을 훑어가던 그가 순간 눈을 번뜩인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수도 케이프타운에서 온 메일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14~17일까지 그곳에서 열린 도서전에 참가해 몇 건의 상담을 했던 터. 즉시 내용을 확인한 그는 이내 “야호” 소리와 함께 ‘히딩크 어퍼컷’을 날린 뒤 일행을 깨운다.

“와-. 해냈어! 대박이야, 대박-. 무려 26억4000만원어치나 팔게 됐단 말이야!”

이 사람은 바로 영·유아용 그림동화책으로 세계를 정복(?)하겠다며 전 세계를 휘젓고 다니는, 그래서 출판계에서 돈키호테로 통하는 출판사 ‘여원미디어’의 김동휘(54)사장. 그가 일을 낸 것이다. 그는 불과 며칠 전 제3회 케이프타운 북 페어에 참가했었다. “턱도 없다”는 주위의 만류를 무릅쓰고 감행한 도전이었다. 일행도 에이전트 등 고작 4명뿐. 지난해 출판협회가 홍보 차원에서 참가했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코리아’를 낯설어 하기만 하는 이곳을 찾은 것은 딱히 대번에 책을 팔겠다기보다는 아프리카 대륙 진출 가능성을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30개국 290개 출판사가 참가한 이번 도서전에 김 사장은 부스 2개를 설치하고 반응을 기다렸다. 뜻밖이었다. 주요 관람객이 출판 관계자보다 교사, 도서관 사서, 작가(글·그림) 등 전문직 종사자들이었는데, 이들이 “책들이 너무 아름답다”며 극찬과 함께 자신들과 거래하는 출판사 관계자들을 데리고 와 소개해 주는 게 아닌가? 호평만으로도 무한한 가능성을 확인한 셈인데 결과적으로 대박마저 터졌으니….

“우리 출판사는 아시다시피 영·유아용 그림동화를 전문으로 합니다. 이번에 계약한 책도 『탄탄수학동화』『탄탄원리과학동화』『탄탄경제마을』『탄탄창작동화』등 ‘탄탄’ 시리즈 중 20종이에요. 남아공에는 11개 공용언어가 있는데 이 중 6개 언어로 종류마다 2000권씩 다섯 차례에 걸쳐 구입하기로 한 겁니다. 물론 26억4000만원이란 금액이 공산품을 기준으로 하면 적다고도 볼 수 있지만 문화수출이란 측면에서 보면 엄청난 겁니다. 더구나 고객이 어린이인 점을 감안하면 이 애들이 한국을 이해하며 자라날 테니 앞으로 한국 상품의 수출 등에도 얼마나 도움이 되겠어요?”

각국 언어로 번역·수출된 한국 동화책들. [여원미디어 제공]

김 사장 말마따나 이번 책 수출 계약 성사는 김 사장 개인뿐 아니라 국내 출판계 모두에도 쾌거다. 그동안 중국이나 동남아시아, 프랑스 등에 책 수출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아주 미미한 수준이었던 게 사실. 이뿐 아니라 대부분의 출판사가 영세한 탓에 아예 수출은 엄두도 못 내고 대형 출판사들조차 외국과의 경쟁보다는 국내 판매에 주력해 오히려 외국 책을 들여와 한몫 거머쥐려는 노력만 하고 있던 터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 김 사장의 성공은 국내 출판계에 새로운 비전과 함께 가능성을 보여준 계기가 될 것이란 평가가 ‘뻥’만은 아니란 분위기다.

김 사장의 여원미디어가 책을 수출하기 시작한 것은 2006년 6월 이탈리아에 우리의 전래동화 『반쪽이』가 팔리면서부터. 눈도, 귀도 하나뿐인 ‘반쪽’으로 태어났지만 착한 마음씨와 성실함으로 고난을 이겨내고 끝내 행복하게 잘 살았다는 내용의 책으로 장애인을 우대하는 이탈리아인들한테 큰 호응을 받았다. 이어 같은 해 7월엔 일본에도 전래동화 7권을 수출했다.

장사란 것이 본디 한 번이 어렵지 일단 물꼬가 트면 연달아 터져 강을 이루는 법. 그 후 멕시코, 프랑스, 브라질, 아르헨티나, 독일, 이스라엘, 덴마크 등 무려 15개국에서 주문이 쇄도했다. 지난해까지 1년 반 사이 수출금액은 모두 15억원. 올 들어서도 남아공 건 말고도 인도 4800만원, 중국 6800만원 등 수출이 계속 늘고 있다. 공산품과는 달리 거의 대부분 라이선스 판매라 원가가 들지 않는, 그야말로 세금을 제하곤 통째로 먹는 알짜배기 수출이다.

“저도 이렇게까지 호응이 있을 줄 미처 생각하지 못했어요. 그중에서도 특히 유럽에서 우리 책을 사리라곤 정말 꿈에도 몰랐습니다. 독일의 ‘피셔’나 프랑스의 ‘망고’ 같은 세계적인 출판사가 우리 책을 살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멕시코에선 저희 책 세 권이 교육부 선정도서로 뽑히기도 했습니다.”

김 사장이 책 수출을 결심한 것은 1999년부터 2001년 상반기까지 외국에서 열린 북 페어를 찾아다니면서부터. 국내에 번역 소개할 책들을 찾기 위해 나섰다가 선진국 출판인들한테 무시당한 것이 계기가 됐다. 자신들의 책을 고르려 하자 “한국 수준에 맞지 않는다”는 등 헛소리를 하는 걸 보고 “언젠가 꼭 너희들이 우리 책을 사도록 만들겠다”고 결심한 것이다.

그래서 2003년 4월 이탈리아 볼로냐에서 열린 아동도서전에 참가한 것을 시작으로 프랑크푸르트, 파리, 런던, 대만, 도쿄, 방콕, 과달라하라(멕시코), 부에노스아이레스, 케이프타운, 베이징 도서전 등 지금까지 웬만한 도서전에는 모두 참가해 줄기차게 여원미디어의 책들을 소개했다. 특히 올 5월 열린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 도서전은 출판협회조차 그 존재를 모르고 있는 터에 국내에서 단독으로 참가해 열띤 홍보를 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외국에 책을 팔려면 정말 수준이 높은 걸 만들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자각을 하게 됐고, 또 이를 제작에 반영한 덕분에 점차 반응이 좋아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책에 들어 있는 그림을 이용해 한국적인 냄새가 물씬 풍기는 홍보전단을 만들었는데 가는 곳마다 1만여 장이 하루 만에 동나는 걸 보고 ‘아 되겠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 느낌이 점점 진해지더니 오늘 같은 결과로 이어진 것입니다.”

김 사장이 출판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실로 우연이었다. 전남 해남이 고향인 그는 대학 진학을 위해 삼수(三修)까지 했으나 실패한 뒤 오랜 방황을 해야 했다. 고교 때까지만 해도 제법 똑똑하다는 소리를 들어왔던 터라 그만큼 충격이 컸던 탓이다. 자신에 대한 회의를 포함해 ‘우주적 고민’을 도맡은 상태로 화엄사, 선암사 등 절간을 전전하며 마음을 달래고자 닥치는 대로 책을 읽어댔다. 6년여의 방황 끝에 1981년 해외 만행을 결심하고 여행비를 마련하기 위해 아르바이트로 시작한 것이 출판 일이었다. 목표가 있었기에 물불 가리지 않고 열심히 하다 보니 작정한 1년이 됐을 무렵 사장이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하며 붙잡는 게 아닌가. 며칠을 고민하다 결국 “이것도 운명이려니” 하고 그대로 눌러앉았다. 이곳에서 그는 11년간 일하며 결근은커녕 단 한 번의 지각이나 조퇴도 없이 제작부터 유통, 수금까지 출판 관련 모든 일을 바닥부터 철저히 익혔다.

그리고 마침내 92년 독립해 ‘대일(大一)’이란 이름으로 출판사를 차렸다. 퇴직금으로 받은 1000만원으로 초등생용 전래동화전집(20권) 『어린이 큰 마을』을 펴내 한 달 만에 3000질을 팔아치웠다. 수익만 6000만원. 그동안 쌓아놓은 노하우와 인맥이 탄탄한 데다 그림, 디자인 등 모든 면에서 당시로선 최고 수준으로 만든 덕분이었다. 3년 뒤엔 상호를 ‘한국아동교육개발원’으로 바꾸고 과학학습만화를 만들어 매년 3만 질씩(판매가 30억원) 팔아치우는 등 대히트를 기록하기도 했다.

“남들은 잘해야 한 해 5000~1만 질 팔 때니까 엄청난 거죠. 아이템별 소(小)사장제를 도입한 게 주효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잘나가던 김 사장도 IMF 위기는 어쩔 수 없었다. 97년 말 16억원의 부도를 냈다. 이때도 그를 살린 건 그의 성실함과 신용을 믿어준 인맥과 불굴의 뚝심. “나이 50도 안 돼 주저앉으면 태어난 이유가 없다”며 자신을 다그쳐 3년 만에 다시 설 수 있었다.

‘고통의 터널’을 지난 뒤 그는 모든 걸 바꿔버렸다. 2001년 우선 회사 이름을 지금의 ‘여원미디어’로 하고, 타깃을 초등생에서 영·유아로, 소사장제를 전국총판시스템으로 대신했다.

그리고 경험한 대로 ‘기업이든 개인이든 기초가 탄탄하면 탄탄대로를 가게 마련’이라는 뜻에서 모든 아이템에 ‘탄탄’ 타이틀을 붙여 이미지를 통일시켰다. 책 내용을 단순히 양 늘리기보다 기능별로 나눠 세팅하고, 법제화되기 5년이나 앞서 도서정가제도 도입해 철저히 지켜나갔다. 대성공이었다. 본격 영업을 재개한 2002년 매출 30억원(순이익 12억원)을 시작으로 매년 20%씩 성장해 지난해엔 180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김 사장은 요즘 절로 신바람이 난다. 해외 이곳저곳에서 새로운 주문이 밀려드는 것도 그렇지만 기존 외국 거래처들이 양과 종류를 늘려 요구해 오기 때문이다. 품질을 인정받고 있다는 증거다. 내년엔 그동안 미처 손쓰지 못했던 아랍에미리트와 이집트 등 중동 지역과 러시아마저 공략해 ‘탄탄’의 월드네트워크를 완성할 계획이다. 그가 “100억원 수출(책으로 치면 줄잡아 1000만여 권)도 시간문제일 뿐”이라고 자신하는 근거다.

김 사장은 자신을 애국자라고 자부한다. 그만큼 부담도 크다. 그래서 국가의 명예에 흠이 가지 않도록 콘텐트의 질을 높이는 데 수익의 80%이상을 쏟아붓는다. 10년도 채 안 돼 16가지 아이템에 1500종의 콘텐트를 확보한 비결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동화책 장사(?)인 그가 왜 ‘세계 정복’ 운운하는 걸까?

“책 수출을 단순히 상품 수출의 하나로 보면 안 됩니다. 우리의 문화와 혼을 심는 작업이죠. 안데르센 동화를 통해 덴마크를 기억하듯이 말이에요. 특히 어릴수록 각인 효과가 큽니다. 인종이나 빈부를 따질 것 없이 아기들은 모두 새 도화지 아닙니까? 여기에 우리 색을 칠해야죠.”

이만훈 기자, 사진=김정훈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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