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변하는한반도기류>7.러시아,北끌어안기로 위상찾기 급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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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탈냉전 이후 동북아 정세가 급변하는 상황에서 러시아는 냉가슴을 앓고 있다.특히 한반도 문제는 러시아의 국제적 위상이 추락했음을 말해주는 대표적 사례로 제기돼 내심 「판세 뒤집기」를 꾀하는 형국이다.
최근 모스크바 외교가는 한반도 문제에 관한 한 러시아가 구경꾼 신세로 떨어졌다는 데 별다른 이의가 없다.
옛소련 붕괴 이후 생긴 6년간의 국제정치적 공백이 러시아의 대(對)한반도 영향력을 상실시켰고 경제가 3등국가로 전락한 현실도 그런 상황을 가속화시켰다는 것이다.
러시아는 최근 한반도 현안에 대해 직접 참여해야 한다는 공식입장을 수차례 밝혔다.그러나 남북한과 미.중 등은 시큰둥한 반응으로 일관해 러시아를 자극하고 있다.
러시아의 외교정책은 최근 눈에 띄게 변화했다.미국을 견제하고러시아의 적절한 위상을 확보한다는 공세적 외교노선으로 전환한 것이다. 지금까지 한반도에서 미국의 영향력이 확대되는 것을 수수방관하다시피 했으나 더이상 이를 좌시하지 않겠다는 자세다.
지난해 6월 리펑(李鵬)중국총리의 러시아 방문에 이어 최근 보리스 옐친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양국 정상회담을 통해 베이징(北京)공동선언을 채택한 것은 동북아의 변화 물결에 대응하는 러시아의 신속한 자세를 보여준 대표적 사례다.
2차대전후 처음 이뤄진 우스이 히데오(臼井日出男)일본 방위청장관의 러시아 방문을 성사시킨 것도 동북아의 새로운 구도에 대응하는 움직임으로 파악된다.
『러시아는 한반도에서 미국의 입김이 일방적으로 통하는 현실을주시하면서 이를 저지하고 자신의 역할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전개하고 있다』고 모스크바 주재 한국대사관은 분석한다.
러시아의 민감한 반응은 최근 한.미가 공동 제안한 4자회담에대한 반응에서 뚜렷하게 드러난다.
러시아는 4자회담에 대해 「노골적 불만」을 드러내고 있다.외무부 대변인은 정례 브리핑에서 『4자회담은 잘 안될 것』이라며불편한 심기를 숨기지 않았다.
한국 관련 외교관들은 『4자회담은 프로파간다(선전)다.회담은잘 안될 것이다.러시아를 제외한 것은 잘못』이라고 공공연하게 이야기한다.
앞으로 러시아의 대 한반도정책은 한가지 방향으로 요약된다.「북한 끌어안기」로 한국.미국에 대한 칼자루를 잡겠다는 것이다.
한국 일변도의 한반도 정책 때문에 북한과의 관계를 급속히 냉각시킨 점에 대한 반성 역시 그 어느때보다 높다.대북 관계를 회복해 주도권을 잡아야 한다는 발상이 94년부터 표면화됐다.행동에 나선 것은 올해부터라고 볼 수 있다.
지난 4월초 독립국가연합(CIS)출범 이후 처음으로 러시아 정부가 발레리 이그나텐코 부총리를 평양에 보내고 경제과학공동위를 통해 앞으로의 경제적 지원 원칙을 마련한 것도 북한 끌어안기의 몸짓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러시아의 이같은 노력이 얼마나 성과를 거둘지는 미지수다. 『경제가 엉망인 러시아가 북한에 실제로 얼마나 도움을 줄수 있을지 협상대표마저 회의적이었다』는 외교소식통들의 발언이 이를 뒷받침한다.더욱이 북한이 러시아의 추파에 아랑곳하지 않고미국만을 대화 파트너로 삼으려 한다는 점과 한국 역시 남북한 문제의 당사자로 러시아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점도 제약요인이다. 러시아가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무리수를 쓰기 시작한다면 한반도 정세는 자칫 불필요하게 꼬일 수 있다.
한.미가 앞으로 「러시아 달래기」에 나서야 할 이유가 여기에있다.
모스크바=안성규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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