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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인터뷰>호남 유일의 非국민회의 당선자 강현욱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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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총선을 치른지 2주째 되는 날 서울 강남에 있는 강현욱씨의 오피스텔로 그를 만나러 갔다.그는 호남지역 37개 선거구 가운데 신한국당 당원이라기보다 국민회의 소속이 아닌 사람으로서 이번 국회의원 선거에서 당선된 유일한 사람이다.처음 만나 인사를나누면서 나는 이 개밥에 도토리 같은 당선자의 의미(意味)를 생각했다.전(全)한국적 의미는 무엇이며 호남적 의미는 무엇일까.특별한 의미라곤 없는 그냥 예외였을까,아니면 순전한 우연이었을까.군산은 광주.전남이 아니라 전 북이라서 이런 예외가 생길수 있었던 것일까.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의 선거운동 방식에는 상당한 점수를 쳐 주어야 한다는 느낌이 갔다.그것이 모두일까.그가 말한다.
『아무튼 (호남)지역의 정서는 굉장히 어렵습니다.지난해 전북지사에 출마했다가 낙선했습니다만 올해가 작년보다도 더 어려워졌다고 봅니다.그 이유는 작년 것은 그냥 지방행정 책임자를 뽑는선거였습니다만 올해 총선의 의미는 내년 대통령 선거에 초점이 맞춰졌습니다.내년 대선(大選)에서 호남 출신을 대통령에 당선시키자면 금년 국회의원에는 이런 이런 사람을 뽑아야 한다,이번 기회가 마지막이다,이런 식으로 몰아가니까 지역 정서가 제게 불리한 쪽으로 더 굳어지더군요.』 그는 4년 전 14대 국회의원선거 때도 출마했으나 낙선했다.노태우(盧泰愚)대통령은 그 후 그를 농림수산부 장관으로 발탁했다.장관 자리를 1년 만에 물러났다. 그는 제3회 행정고시에 합격한 정통 관료 엘리트 출신이다.재무부 이재국장,대통령 경제 비서관,경제기획원 예산실장,전라북도 지사,동력자원부 차관,경제기획원 차관,이런 순서로 유능하고 착실한 관료가 밟을 수 있는 최고의 출세 길을 거 쳤다.
『제가 어떻게 했기에 이번 선거에서 당선했느냐,이걸 한마디로무어라고 설명할 길은 없군요.농림수산장관 자리에서 물러난 후 3년 동안 제가 비록 14대 때 국회의원에 진출은 못했습니다만지역에 내려가 지역 발전을 위해 여러가지를 계 속 챙겼습니다.
그 전에 전북 지사로 있었을 때,그리고 농림수산장관 했을 때도제가 지역을 위해 여러가지 일을 해냈다는 것을 유권자들은 잘 알고 있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월간 조선』이 도청 직원을 상대로 역대 전북 지사 가운데 누가 가장 지역 발전을 위해 일을많이 했나를 조사해 발표했는데 제가 마흔 몇명 전임 도지사들 가운데 공교롭게 1등을 했습니다.그리고 이번 선거에서 제게 큰도움을 준 것으로는 이 책자가 있습니다.제가 쓴 것이 아니고 제 여동생이 쓴 것입니다.』 그가 내게 내민 책은 『바람은 언제나 고향으로 분다』는 제목의 것이었다.다분히 선거운동용이었을것이라는 느낌을 주었다.그러나 독자를 금방 식상케 하는 후보자자화자찬 수준의 책은 결코 아니다.이건 득표 전략 책자로서는 무척 고급이 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 강희주씨의 다섯 남매가 보낸 행복했던 유년 시절,그 후에 겪은 어려움, 그것을 이겨낸 남매 스토리다.읽으면 계속 읽게 되는 따뜻하고 소박한 문장,외면할 수 없는 친근감이 차곡차곡 담긴 책이다.
강현욱씨는 군산에서 초.중.고등학교를 마쳤다.그의 부친은 초등학교 교장이었다.강현욱씨가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던 때 이들 남매는 차례로 부모를 잃었다.맏이인 강현욱씨는 남동생 셋,누이동생 하나,이렇게 네 동생들을 돌 보며 가정교사 생활 등으로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외교학과를 졸업했다.이런 것이 고향 군산과 그 부근을 사랑하는 이들 남매의 강한 애향심과 함께 이 책의 내용을 이루고 있다.
강현욱씨는 철저히 개인 베이스 선거운동을 폈다며 다음과 같이말한다. 『저는 당을 전혀 내세우지 않았습니다.오히려 유권자들이 신한국당을 철저하게 싫어하고 미워하고 있다는 것을 제가 잘알고 있다는 점을 늘 먼저 꺼내 그들에게 얘기했습니다.그럼에도불구하고 제가 신한국당을 떠날 수 없는 것은 군산과 전북을 위한 일을 하려면 신한국당에 남아 있는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여당 의원은 국가 뿐만 아니라 지역을 위해서는 더욱필요한 것이라고 설득했습니다.군산과 전북이 차지해야 할 정부예산 투자의 몫을 찾아와야겠는데 이것은 여당 국회의원이라야 가능하다는 것을 말했습니다.예산 편성을 위한 당정(黨政)협의회에 참석하는 그 지역 출신 국회의원이 하나도 없다면 누가 그 지역발전을 위해 필요한 예산을 자기 일처럼 확보해 내려고 하겠습니까,제가 이 일을 맡아 하고 싶으니 여러분은 저를 꼭 밀어 주십시오,이렇게 말했습니다.』 강현욱씨는 이런 식으로 바람 속에바람을 일으킨 것이다.군산에 혹시라도 전반적 호남 정서와는 좀다른 그 어떤 점이 있었던 것은 아니냐고 그에게 물었다.군산에그런 것은 전혀 없다고 대답한다.그 자신이 충실한 호남 정서로무장돼 있다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한 단호한 어조였다.
사실 지역감정이란 것은 인간적이고 순수한 정서다.나,내 가족,내 고장,내 나라,이런 점진적 원근법에 따른 애정 순서를 갖추지 못한 사람은 오히려 그 심성의 근본이 위선(僞善)으로 채워져 있지 않나하는 의심부터 받기에 알맞다.
뿐만 아니다.나와 내 지역에 돌아와야 할 몫을 찾겠다는 주장은 당연하고도 당연하다.문제는 이런 자기 중심적 정서를 실현할수 있는 지혜로운 전략을 찾는 것이다.「경상도 당(黨)」「전라도 당(黨)」「충청도 당(黨)」이런 식의 지역당 환영(幻影)이부추기는 대로 지역마다 그 「지역당」이 각급 의회를 일당독재식으로 싹쓸이하게 해 주어서는 안 된다.
각 정당들이 우리 고장을 위한 정책을 두고 경쟁할 수 있도록중앙.지방을 막론하고 각급 의회의 정당별 의원 구성이 이뤄져야한다. 각 정당 의원 총회에 우리 고장 사람이 참가하고 있어야그 정당이 우리 고장을 몰래 배신하는 경우를 막을 수 있다.이점에서 지역당 몰표는 금물이다.강현욱씨가 말한다.
『다만 군산에는 예를 들어 새만금종합개발사업이 추진중에 있고군산.장항 관리공단이 만들어지고 있습니다.군산 시민들이 볼 때군산은 앞으로 개발 여건이 좋다, 그러니 일 할 수 있는 사람이 차고 앉으면 우리 고장은 잘 사는 지역이 될 것이다,이런 희망을 품고 있습니다.』 외국 시사 평론가 한 사람이 한국인은정치를 스포츠처럼 여긴다고 쓴 기사를 읽은 일이 있다.열광하는정도가 그렇고,자기가 응원하는 지역 팀이 있는 것처럼 지역당이있어 거기로 몰표를 주는 것도 그렇다.
또 있다.선거라는 시합 그 자체가 주는 흥분 말고는 달리 주는 것이 별로 없다는 점에서도 한국의 정치는 스포츠를 닮았다.
「지역당 정서」는 한 때의 유행성 독감 같은 것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언제쯤 이 지역당 정치가 물러갈지 호 남지역에서의그 가능성을 물었더니 그가 대답한다.
『그것은 정부 여당과 저한테 달려있다고 봅니다.』 이 대답 속에 정부 여당에 대한 강력한 요청과 함께 특히 자기 자신의 역할을 끌어넣은 것은 호남지역의 유일한 여당 국회의원으로서 당연하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당찬 마음이 들어있다고 보인다.
깊은 생각 끝에 도달한 어떤 결심이 돋 보인다.
그는 당선도 힘들었지만 그보다는 미래를 향한 짐을 더 무겁게지게 된 것을 자각하고 있는 것으로 들린다.실은 이것은 국회의원 당선자 뿐만 아니라 유권자 누구에게나 기본적인 태도일 것이다.그의 말이 계속된다.
***제하기나름 평가될 것 『야당(호남당)을 뽑았을 때와 마찬가지로 여당(부산 경남당)임에도 불구하고(인물 하나만 보고)뽑아 주었는데도 기대에 차지 않게 되면 (선거구 주민은)변화의필요를 느끼지 않게 될 것입니다.제가 나가서 일을 열심히 하고성과가 나 오면 뭔가 다르다,이런 느낌이 퍼지게 되겠지요.저는호남과 군산을 위한 투자와 기업 유치를 위해서는 정말로 호랑이처럼 싸울 겁니다.이것은 저 자신만을 위한 것은 아닙니다.지역감정을 무너뜨리는데도 좋고 국가 산업을 발전시키는데도 좋 은 일이라고 믿습니다.』 도대체 14대 국회의원 선거에 낙선하고 작년 지방자치제 전북 도지사 선거에서도 낙선했는데 어떤 승산의불빛이 보이길래 이번 선거에 또 출마하게 됐는지 물었다.그의 대답. 『제 주위의 대부분 사람이 작년 전북도지사 선거에 출마하지 말라고 권했습니다.설마 대통령선거도 아니고 지방행정 책임자 뽑는 선거인데 여당이면 어떠랴,지역 바람이 크게 불지는 않을 것이다,이렇게 생각하고 나갔지요.그 선거에서 저는 33%밖에 표를 얻지 못하고 낙선했습니다.다만 군산에서는 이겼습니다.
실망이 컸습니다.앞으로는 정치를 않겠다고 작심했다가 다시 생각하니 군산에서는 이겼으니 조금만 더 노력하면 국회의원에는 당선될 수 있다는 희망이 섰어요.한번 저에게 표를 찍어준 분은 다음에도 또 찍어줄 것이라는 기대가 섰습니다.』 ***“30억 살포”소문에 시달려 그는 선거기간 중에 가장 괴로웠던 일로 강현욱은 6공의 잔당이므로 물러나야 한다고 야당측에서 주장했던 것을 든다.그 다음으로 강현욱은 여당이 특별 관리하고 있으므로30억원이라는 거금을 뿌리고 있다는 소문이 났던 것 때문에 시달렸 다고 한다.
돈을 못 받은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는 주고 자기는 빼놓았다는비난을 하기 알맞았기 때문이었다고 한다.그래서 그는 전략을 바꾸었다.완전히 혼자서 버스나 택시를 타고 다니며 선거운동을 하는 모습을 시민들에게 보여주었다.그의 선거 전단 에는 신한국당공천이라는 말은 커녕 신한국당 소속이라는 표지도 들어 있지 않다. 버스 타고 가다가 초등학교 학생들과 한참씩 얘기를 나누기도 했다.길을 지나가면 이 아이들이 강현욱 아저씨를 부르며 인사를 걸어오기에 이르렀다고 한다.그가 말한다.
『선거 운동은 될수록 많은 유권자를 만나는 것이 좋다는 것을두차례 낙선 경험을 통해 체득하게 되었습니다.그런데 혼자 다니며 아무리 많이 만나더라도 하루에 3백명 정도가 상한입니다.그래서 한길 네거리에 나가 지나가는 버스나 승용차 타고 가는 분들과 눈을 맞추고 인사하는 방법을 썼습니다.이렇게 하니 하루에수천명과 인사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특히 직장에 출근한 다음이면 낮에 길에서는 만날 수 없는 분들과 이런 방법으로 아침 저녁 출퇴근 길에 눈인사를 나누는 것이 가장 좋은 선거운동 방법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어깨띠에 『일하고 싶습니다』라고 써 붙이고 군산거리에 서있었다.중요한 것은 한 사람이 어떤 전략으로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느냐 하는 점에 있지 않다.부산이나 경남도 마찬가지다.
지역 감정의 벽을 깨는 성공적 선거운동을 해내는 후보들의 등장을,국회의원에 당선된 다음에는 정치활동의 성공을 통해 지역당을 부추기는 정치인과 거기에 속는 유권자의 잘못을 깨우칠 수 있게 하는 그런 국회의원들이 앞으로 속속 나오기를 빌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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