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는살아있다>문학하는 동네의 따뜻한 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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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봄볕이 완연했던 지난 24일 오후 그동안 「박재삼 살리기 운동」을 함께한 서벌 시인과 나는 박재삼 시인댁을 방문했다.3차성금을 전달하기 위해서였다.
평생을 직업없이 40여년간 외곬로 시쓰는 일을 직업삼은 시인이 살고 있는 서울 묵동 집은 가난했다.자신의 오래된 시 제목처럼 「아득하면 되리라」는 꿈만 먹고 살아와서일까.그럴수록 그는 꿈꾼다.
그러면 그가 꿈꾸어온 그 아득한 공간은 어디쯤일까.
『죽도록 부지런히 쓴다만/詩를 쓰는 것은/돈과는 거리가 멀고/그러면서 그 짧은 행간에/짜릿한 共感을 심는 일은/늘 아득하기만 하네』(「아득한 靑山을 보며」중에서).
시작에만 몰두해 모든 것을 시에 걸고 살아온 朴시인의 세계가잘 보이는 최근의 시다.모든 시 쓰는 사람이 바라보는 본보기의시인답게 그는 넉넉지않게 살아간다.철저하게 가난했지만 오로지 시작에만 모든 것을 바쳐 살아왔다.부지런히 시 를 쓴 그 공간은 가난과 눈물의 공간이 된다.
그 아득한 청산(靑山)은 현실과 동떨어진 이상의 세계로 남는다.고도한 상징으로 시로써 이룰 수 없는 세계를 감회로 풀어낸다. 문학은 철저히 혼자해내는 고독한 작업이다.무엇을 붙잡고 의지하고 싶을 때 그 주변에 아무도 없다면 얼마나 쓸쓸할 것인가.그러나 그렇지 않은 시인이 있다.박재삼 시인은 살아가는 일의 어느 부분도 소홀히 여기지 않고 소중하게 여기며 살았다.
그가 병으로 쓰러졌을 때 문인들의 입에선 하나같이 박재삼시인은 살아나야 한다는 말로 성금을 냈다.
숲에서 나오니 숲이 더 잘 보인다는 말처럼 그분을 돕는 분들이 너무도 많았다.모금운동이 성공적으로 된 것도 평소 그분이 쌓은 덕이라는 걸 알았다.
그야말로 산소량이 풍부한 녹지대같이 문학하는 동네는 인정이 마르지 않고 살아 있었다.
과연 모금운동이 실효를 거둘까,병세는 호전될까 했던 당시의 의구심도 완전히 사라졌다.하루하루 나아가고 있는 박재삼 시인께,박시인을 살려낸 문인들께 감사드린다.
(시인) 노향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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