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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E] ‘웰다잉’은 또 다른 웰빙 삶을 더 풍성하게 만들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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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미국 카네기멜런대 랜디 포시 교수의 ‘마지막 강의’가 지난달 25일(현지시간) 끝났다. 말기 췌장암으로 시한부 삶을 선고받고도 밝은 미소로 삶과 꿈을 이야기한 동영상으로 세계를 감동시켰던 그는 죽음마저 철저히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였고, 마지막까지 여유 있게 농담을 하면서 여행을 떠났다. 그의 ‘마지막 강의’는 죽음이 아니라 삶과 꿈에 대한 강의였다. 반면 우리 사회의 현실은 어떤가. 인간으로서 존엄하게 밝은 미소 속에서 여행을 떠나는 사람이 아직 많지 않다. 시한부 인생을 살면서도 꿈과 희망을 설파한 포시 교수의 죽음에서 교훈을 얻어야 하는 이유다.

◇랜디 포시 ‘긍정적인 삶의 전도사’=포시 교수는 긍정적인 삶의 전도사였다. 죽음 앞에 의연해지면서 삶을 더욱 풍성하게 만드는 ‘웰다잉(well-dying)’이란 화두도 던졌다. 웰빙(well-being)은 잘 먹고 잘 사는 것, 행복하고 건강한 삶을 뜻한다. 웰다잉은 바로 웰빙의 완성이다. 우리 사회에 퍼져 있는 물질중심·경제만능주의도 웰다잉으로 치유될 수 있다. 웰빙이 개인 중심의 ‘사유’라면 웰다잉은 영혼의 성숙과 사랑의 실천을 의미한다.

우리 사회에서 ‘웰다잉’의 현주소를 파악할 수 있는 통계가 있다. 서울대병원 허대석(의대) 교수팀이 전이성 암진단을 받았던 국내 환자 298명을 사망 순간까지 추적·관찰한 결과 말기암 환자 중 33.6%가 임종 1개월 전까지 응급실을 찾은 것으로 나타났다. 환자의 50.3%는 임종 2개월 전, 94.6%는 임종 6개월 전까지 적극적인 항암제 치료를 받았다. 미국에선 임종 6개월 전까지 항암 치료를 받은 환자는 33%에 불과했다. 우리 사회에서 안락사와 존엄사 논쟁이 그치지 않는 것도 심폐사·뇌사 등 죽음 판정의 육체적 기준이 마치 죽음의 정의(定義)인 양 죽음에 대한 오해가 심하기 때문이다.

◇안락사와 존엄사 논쟁=최근 서울서부지방법원은 식물인간이 된 어머니가 인간다운 죽음을 맞을 수 있도록 치료 중단을 허락해 달라는 자녀들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논란의 소지가 있는 안락사와 다르게, 존엄사는 더 이상 치료 가능성이 없을 경우 자연스럽게 죽음을 맞자는 것이다. 자연사는 결코 생명 경시일 수 없다. 자연사를 거부하는 것이야말로 자연법칙에 대한 무지가 아닐 수 없다. 존엄사는 이미 의료 선진국에선 받아들여지고 있다. 대만은 자연사법으로 법제화했고, 일본도 법제화 단계에 접어들었다. 우리는 지금까지 ‘존엄한 삶의 권리’만 생각했지만 이제 죽음과 삶의 질 향상을 위해 ‘존엄한 죽음의 권리’를 깊이 생각해볼 때가 됐다.

◇“생명은 소중한 것”=사람들이 자주 범하는 오해가 “죽으면 다 끝나는 게 아니냐”는 육체 중심의 사고방식이다. 그러나 달라이 라마는 “죽음이란 옷을 갈아입는 과정”이라고 했다. 생사학을 창시한 미국의 정신과의사 엘리자베스 퀴블러로스는 죽음을 눈앞에 둔 어린아이를 향해 이같이 말했다. “우리 몸은 번데기와 마찬가지다. 죽으면 영혼은 육신으로부터 벗어나 나비처럼 예쁘게 날아서 천국으로 날아간다. 죽음은 결코 끝이 아니다.”

포시 교수가 주는 교훈은 마지막 순간까지 낙천적이고 열정적인 삶을 살았다는 것이다. 100만 명 이상이 본 ‘마지막 강의’란 동영상에서 그는 절대 꿈을 포기하지 않아야 한다고 말한다. 포시 교수처럼 죽음에 대처하는 것은 노력하기만 하면 누구든지 할 수 있는 일이고, 누구나 반드시 해야 할 일이다.

박길자 기자, 오진탁 한림대 생사학연구소장(철학과 교수)

“남은 시간 많지 않다는 걸 당신은 언젠가 알게 될 것“
랜디 포시 교수가 남긴 말말말

랜디 포시 카네기멜런대 교수가 청중에게 강연하고 있는 모습. 그는 암 투병 끝에 올 7월 47세의 나이로 타계했다. [중앙포토]

▶“시간은 당신이 가진 전부다. 그리고 당신은 언젠가,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최선을 다하면 꿈을 좇지 않아도 그 꿈이 오히려 나를 찾아온다.”

▶“늘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잘못했으면 흔쾌히 사과하며 다른 사람의 장점을 발견하라.”  

▶“ 벽은 우리의 꿈을 좌절시키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벽은 우리가 그 꿈을 얼마나 절실히 원하는지를 보여주기 위해 있는 것이다.”

▶“가장 좋은 금은 쓰레기통 밑바닥에 있으니 애써 찾아라.”

▶“만약 조언을 하려는데 나에게 오직 세 단어만 허용된다면 단연 ‘진실만을 말하라(Tell the Truth)’를 택할 것이다. 그러고도 세 단어가 더 허용된다면 나는 거기에 ‘언제나(All the Time)’를 더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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