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이머우 “정치화된 서구 시각 유치하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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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호 04면

장이머우의 초기작들은 중국 내에서 상영허가를 받지 못했다. ‘붉은 수수밭’ ‘국두’ ‘홍등’ 등에 묘사된 매매혼·가족살해·근친상간 등은 사회주의 윤리규범에 어긋나는 불온한 요소로 비판받았다. 가족 3대를 통해 일제시대부터 문화혁명까지의 격변기를 담아낸 영화 ‘인생’(94년) 역시 국내에선 상영금지 처분을 받았다. 물질만능과 개인주의의 새로운 풍조를 배경으로 젊은이들의 불안을 그려낸 영화 ‘침착하라’(97년)는 검열에 걸려 재촬영을 한 뒤에야 베니스영화제에 출품됐다. 사실상 ‘검열대상 1호’ 영화감독이었다.

99년 칸 영화제 “체제선전용” 비판에 출품 철회

그러나 장이머우는 90년대 말부터 친(親)정부 성향으로 돌아섰다. 그러면서 상업주의를 우선하는 블록버스터 감독으로 변신하는 길을 택했다. ‘영웅’은 할리우드 영화를 제치고 중국 내 흥행수입 1위를 차지하고 미국 본토의 흥행에도 성공했다. 대만 출신 리안 감독의 ‘와호장룡’에 자극받아 중국적 소재에다 무협영화 기법을 택한 게 먹힌 것이다. 반면 과거의 장이머우를 기억하는 이들은 ‘영웅’에 배반감을 느낀다.

진시황의 악행을 덮어주면서 천하통일의 업적을 긍정하는 스토리야말로 장이머우의 변화, 즉 개인보다 체제, 변혁보다 안정을 지지하는 것으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이런 기미는 ‘책상서랍 속의 동화’(99년)에서 드러났다. 시골학교의 대리교사를 맡게 된 10대 소녀가 도시로 떠난 가출 학생을 다시 데려오기 위해 온갖 고초를 겪는 줄거리다. 당시 칸영화제에서 “예술적이지만 선전용”이라는 비평이 나오자, 장은 영화제 출품을 철회했다. 장은 칸에 보내는 서한을 중국 언론에 공개하면서 “서구가 정치화된 해석 방식만 고수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 반정부 영화 아니면 정부대변 선전물이라는 식의 관점이 편향적이고 유치하다”고 주장했다. 데뷔 초기 서구 영화계의 격려와 찬탄을 받았던 장으로선 본격적인 변신을 선언하는 발언이었다. 이는 ‘영웅’ ‘황후화’로 현실화됐다.

그는 이제 민중보다 영웅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영웅’의 진시황이 민족 영웅이라면, ‘책상서랍 속의 동화’의 소녀 교사는 사회주의 소영웅과 흡사하다.

개막식에 앞서 장은 “우리가 보여주려는 것은 ‘우리가 누구’라는 것과 ‘우리와 당신들은 한 가족’이라는 점”이라고 말했다. 결국 그는 개막식 공연에서 ‘우리가 누구’라는 대목을 중화(中華)의 당당한 자부심으로 풀어 넣었다. 또 13억 중국인이 한솥밥을 먹는 한 가족이라는 국가통합 이념을 호소했다. 장이머우로선 지난 10년 간의 삶과 고민을 집대성한 결론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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